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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404(태종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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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459(세조 5) |
국적 | 조선, 한국 |
요약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한산. 자는 병보(屛甫), 호는 존양재(存養齋). 할아버지는 고려말의 거유 색(穡)이며, 아버지는 지중추원사 종선(種善)이고, 어머니는 권근(權近)의 딸이다.
1427년(세종 9) 친시문과에 급제한 뒤 집현전학사로 임용되었고, 1436년 김문(金汶)과 함께 〈강목통감훈의 綱目通鑑訓義〉를 편찬했다.
문종대까지 집현전직제학·동부승지·좌부승지·도승지를 역임했고, 저화(楮貨)·답험손실법(踏驗損實法)의 적용에 대해서는 불편함과 답험관의 정실 처리 등의 이유를 들어 반대했다. 1452년(문종 2) 〈세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했고, 다음해 계유정난 때는 수양대군(首陽大君) 편에 서서 권력 장악을 도와 정난공신(靖難功臣) 1등에 책록되었다. 이어 호조판서·병조판서로 승진했는데, 세조가 왕권강화를 위해 의정부의의제(議政府擬義制)를 육조직계제(六曹直啓制)로 바꾸려 하자 이에 반대하는 상소를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455년(세조 1) 세조 즉위를 도운 공으로 좌익공신(佐翼功臣)에 봉해졌고, 다음해 성삼문(成三問) 등의 단종복위운동이 실패한 뒤 판중추부사로 승진했다. 그뒤 대제학·영중추원사·경기도관찰사 등을 역임했다. 계유정난 때 허후(許詡)가 살상을 반대하자 이를 탄핵하여 죽게 했으며, 조카인 사육신 이개(李塏)는 그가 변절했다 하여 상종하지 않았다. 시호는 문열(文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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