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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열단의 창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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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봉

1940년 조선의용대 선무공작 영상

ⓒ Sienic/wikipedia | Public Domain

1919년 3·1운동을 계기로 일부 독립군 양성론자들은 군대양성노선을 포기하고 소수의 결사를 조직하여 암살·파괴 활동을 전개함으로써 한국인의 애국심을 자극해 민중폭동을 유발할 것을 주장했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같은 해 11월 9일 만주 지린 성[吉林省] 파호문 밖 중국인 농부 집에서 신흥무관학교생인 김원봉(金元鳳)·이종암(李鍾巖)·신철휴(申喆休)·서상락(徐相洛)·한봉인(韓鳳仁)·이성우(李成宇)·강세우(姜世宇)·한봉근(韓鳳根), 밀양 3·1운동의 참가자인 윤세주(尹世胄)·김상윤(金相潤), 상하이[上海] 출신의 곽경(郭敬), 배동선(裵東宣)·권준(權俊) 등 13명이 모여 암살·파괴 노선의 비밀결사 독립운동단체를 결성했다.

단체 이름은 '천하의 정의의 사(事)를 맹렬히 실행'하기 위해 의열단으로 하고, '조선독립과 세계평등을 위해 신명을 바친다'는 등의 내용을 담은 공약 10조를 행동지침으로 결정했다. 또한 암살대상을 조선총독부고관·군부수뇌·대만총독·매국노·친일파거두·밀정 및 반민족적 토호열신 등 '의열단7가살'로, 파괴대상을 조선총독부·동양척식회사·매일신보사·경찰서·중요기관 등으로 규정했다. 단장에는 김원봉이 선출되었지만, 실질적인 조직·이념 지도는 전(前)대한광복회원 황상규(黃尙奎)가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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