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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권준은 의열단을 결성하는 등 국내와 해외에서 수많은 항일운동을 벌였다.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1917년 광복회에 참여하여 항일 투쟁을 전개하다 1919년 3·1운동 직후 만주로 망명해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하였다. 1921년 북경에서 김원봉과 같이 의열단을 조직하고 군자금 조달, 폭탄 제조 등의 임무를 수행하다 국내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32년 남경에서 중국정부의 후원을 받아 한국인 군사학교를 설립하고 교관으로 독립운동 간부를 양성하는 한편, 민족혁명당에 입당하여 활약했다. 1937년 조선의용대 비서장으로서 항일무한방위전에 참가하다 1942년 조선의용대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휘하의 광복군에 합류할 때 임시정부에 들어갔고, 1944년 내무부차장을 역임하였다.
본관은 안동(安東). 본명은 중환(重煥), 호는 백인(百忍)·양무(揚武). 한동안 장수화(張樹華)라는 가명을 사용하였다. 경성공업전습소를 졸업하고, 1917년 광복회에 참여하여 항일 투쟁을 전개하다 1919년 3·1운동 직후 만주로 망명하여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하였다. 1921년 북경에서 김원봉(金元鳳)과 같이 의열단(義烈團)을 조직하고 군자금 조달, 폭탄 제조 등의 임무를 맡아 종로경찰서, 총독부, 동양척식회사 등의 폭탄 투척과 동경 니쥬바시투탄의거[二重橋投彈義擧] 등을 지원하다 국내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중국으로 망명한 그는 1924년 상해에서 열린 중국국민당 제1차전국대표대회에 참관인으로 참석했다. 1926년 손문(孫文)의 추천장을 받아 황푸군관학교에서 군사훈련을 수료하고 북벌전(北伐戰)에 참전하였다. 같은 해 한구(漢口)에서 개최된 한국, 중국, 인도, 몽고, 안남(安南), 대만인 등으로 조직된 동방피압박민족연합회(東方被壓迫民族聯合會)에 한국 대표로 참석하여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32년 남경에서 중국정부의 후원을 받아 한국인 군사학교를 설립하고 교관으로 독립운동 간부를 양성하는 한편, 민족혁명당(民族革命黨)에 입당하여 활약하였다. 1934년에는 중국군 연장(連長)으로 측면에서 독립운동을 지원하면서 일본군과의 전투에 참전하였다. 1937년 조선의용대 비서장으로서 항일무한방위전(抗日武漢防衛戰)에 참가하였다. 1942년 조선의용대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휘하의 광복군에 합류할 때 임시정부에 들어갔고, 1944년 내무부차장을 역임하였다. 광복 직후 무한지구 교포선무단장과 광복군 제5지대장에 임명되어 활동하다가 1946년 12월 귀국하였다. 1948년 정부 수립 후 육군대령으로 특채되어 제106여단장·초대 수도경비사령관·103사단장·서부지구경비사령관 등을 지내다가 병으로 사망하였다.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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