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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불교 종파 가운데 하나.
계율을 연구하고 널리 펴는 것을 종지(宗旨)로 한다. 불교가 중국에 전래된 이후 동진시대에 〈십송률 十誦律〉·〈사분율 四分律〉 등의 율전(律典)이 한역되면서 계율에 대한 연구가 성행했다. 북위시대에 이르러 법총(法聰)이 〈사분율〉을 연구하여 사분율종(四分律宗)을 개창했다. 뒤이어 지론종(地論宗)의 혜광(慧光)이 율종을 성하게 했으며, 그 계통을 이은 도선은 남산율종을 열었다.
한편 법려(法礪)는 〈사분율〉을 연구하여 상부종(相部宗)을 열었으며, 법려의 제자 회소(懷素)는 법려의 〈사분율소 四分律疏〉를 비판하며 〈사분율신소 四分律新疏〉를 지어 동탑종(東塔宗)을 열었다. 남산종·상부종·동탑종의 3종파 가운데 남산종만이 명맥을 계속 이어 번영하여 송대(宋代)까지 전해졌다. 4종파의 근본적인 차이점은 계체(戒體)에 있었다.
계체란 계를 받을 때 그것을 받는 사람이 마음에 받아들이는 법체(法體)를 말한다. 사분율종에서는 〈성실론 成實論〉에 의거하여 계체가 색(色)도 아니고 심(心)도 아닌 불상응행법(不相應行法)이라고 했으며, 상부종도 이를 따랐다. 반면에 동탑종에서는 〈구사론 俱舍論〉에 의거하여 계체를 무표색(無表色)으로 보아 색법(色法)이라 했다.
그리고 남산종에서는 유식학(唯識學)에 입각하여 계체를 아뢰야식(阿賴耶識) 가운데에 생하는 마음의 종자(種子)라고 했다. 이처럼 도선은 앞의 3종파와는 달리 대승불교의 유식학에 입각하여 계체를 설명함으로써, 대승불교가 주류인 중국불교에서 우월한 지위를 얻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백제의 승려 겸익이 526년(성왕 4) 〈오분율 五分律〉의 산스크리트본을 인도에서 구하여 번역했다. 또 담욱(曇旭)과 혜인(惠仁)은 율소(律疏) 36권을 저술했다. 이로부터 백제의 율종이 시작되었다. 신라에서는 자장율사(慈藏律師)가 638년 중국에 건너가 종남산(終南山) 운제사(雲際寺)에 머물며 공부하다가, 643년에 귀국하여 통도사(通度寺)에 계단을 만들어 율을 널리 선양했다. 신라에서는 이로부터 율종이 시작되었다. 이후 고려말까지 명맥을 유지해오던 율종은 조선시대에 들어와 억불정책에 의해 모든 불교종파가 선교양종(禪敎兩宗)으로 통합되는 과정에서 사라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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