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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다른 표기 언어 army , 陸軍

요약 지상전을 위해 조직된 한 나라의 군대 조직. 고대 어느 시대에 육군과 같은 군사조직이 기원했는지는 알기 어려우나, 고대국가를 거치면서 대부분의 군대는 육군의 형태로 존재했다. 프랑스 혁명은 육군의 발전에 가장 큰 변화를 가져왔다. 프랑스의 육군 체제는 이후 보편화된 징병제도의 선구가 되었다. 초기 육군은 대부분 보병과 기병으로 구성되었으나, 무기는 육군의 전술과 제도의 변화에도 큰 영향을 미쳐서, 총과 대포같은 화약무기가 개발된 15세기 이후에는 기병의 역할을 대포와 전차가 대체했다. 현대전에서는 헬리콥터와 같은 육군항공대의 전력도 육군의 주요 구성요소로 취급된다.

육군(army)

ⓒ 대한민국 국군/wikipedia | CC BY-SA 2.0

개요

지상작전을 주임무로 하는 대단위 군조직. 한 나라 안에서 지상전을 위해 조직되고 운영되는 군대조직 전체를 육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국의 <국군조직법>에서는 "육군은 지상작전을 주임무로 하고 이를 위하여 편성되고 장비를 갖추며 필요한 교육·훈련을 한다"(제3조 1항)고 규정하고 있다. 고대 도시국가 시대에 육군과 유사한 기능을 발휘하는 조직이 발생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본격적이며 정규적인 군사조직으로 발달한 것은 프랑스 혁명을 전후해서이다. 프랑스는 체계적인 징병제도를 운영함으로써 그 이전 시대에 사회적 계급에 따라 전쟁 발발시 수시로 징발되어 운영되던 군대를 근대적인 정규군 조직으로 개편했다. 20세기 이후 거의 모든 근대국가에서 육군은 대통령과 같은 선출직 민간인에 의해 통솔되며, 전투부대와 지원부대로 구분된다.

기원

육군이 어느 시대에 기원을 두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 도시국가가 등장하고, 그들이 경작지와 물을 얻기 위해 끊임없는 투쟁을 벌이고, 요새와 성벽을 쌓고, 도시국가가 왕국과 제국으로 팽창한 것과 때를 같이하여 고대세계의 중심이었던 이들 지역에서 육군 조직이 나타나 성장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당시의 육군은 대부분 보병과 기병으로 구성되었다. 이들의 주 무기는 창과 활이었다. 고대의 육군 전투의 보편적인 양상은 양쪽이 전열을 이루어 원거리에서 활로 상대방의 전투력을 약화시킨 후 대열을 전진시켜 충돌하여 창으로 상대 진영을 살상하는 방식이었다.

고대 육군의 유형

고대 국가의 육군은 4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통치자를 호위하며 '왕 앞에서 식사를 했던' 전사계급이었다. 여러 고대 국가에 존재했던 이 계급제도의 기원을 둘러싸고 지금도 많은 학문적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어떤 경우에는 전사계급이 단순히 어떤 지역을 정복하여 그 지역 원주민들을 무장 해제하고 노예로 삼은 뒤에 무기를 계속 보유하고 있는 정복자들을 의미했다. 또다른 경우에는 전사계급이 단순히 출신이나 민족에 따라 결정되었던 것처럼 보인다.

왕을 호위하는 근위대 다음으로 중요한 집단은 수도 바깥 지역에서 왕이 임명한 총독이나 대공을 모신 지방군이었다. 고대에 흔히 볼 수 있었던 3번째로 중요한 집단은 용병이었다. 이들은 이집트의 초기 파라오들을 섬겼던 누비아족처럼 노예인 경우도 있었고, 로마 제국을 위해 싸운 팔레스타인인이나 게르만족처럼 해적인 경우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백성들을 강제로 징집하여 병역을 부과하는 부역제도는 오래 전부터 모든 사회에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부역자들은 공공사업에 동원되기도 했으나, 전쟁이 일어나면 가볍게 무장을 갖추고 보조부대로 전투에 참여하거나 도로를 건설하여 정규군을 지원할 수도 있었다.

봉건시대의 군대

봉건시대에는 오랫동안 복무하는 정규적인 군대가 존재하지 않았다. 중세 초기에 귀족들은 단기간의 원정에 참여하여 군인의 의무를 수행하는 가신들을 거느리고 있었으며, 기사들의 본업은 농사였다. 영주의 가신들은 1년에 40일의 병역의무만 지고 있었기 때문에, 전투는 그들에게 부업일 수밖에 없었고 봉건귀족들도 직업장교의 자질을 전혀 갖추고 있지 못했다.

전문직으로서의 군인은 15세기에 가장 중요한 걸음을 내디뎠다. 15세기에 스위스와 이탈리아 및 독일 군인들로 이루어진 용병대는 자신들을 필요로 하면 어디든지 찾아가서 돈을 받고 싸웠다. 용병은 국제 약탈자였고, 용병대장은 어느 정도 근대적 의미의 장교 자질을 갖춘 유능한 지휘관들이었다. 이들의 생계수단은 전쟁으로 군주나 대공과 계약을 맺고 직업군인으로서 일했다. 이 무렵 중국에서 발명된 화약이 유럽에 전파되어 광범위하게 군사용으로 사용되면서, 총과 대포 등 종래의 무기보다 원거리에서 공격이 가능한 화약무기들이 개발되었고, 육군도 화약무기를 기반으로 급격하게 재편되었다.

상비군 체제의 발생

시대에 뒤떨어진 봉건제도와 용병 대신 소유제도가 나타난 것은 17, 18세기였다. 이 제도에서는 대령이 연대의 소유자가 되었고, 대위는 중대의 소유자가 되었다. 왕은 이들을 왕국의 장교로 인정하여 병사를 모집할 권한을 주었다. 처음에는 전쟁이 일어날 때마다 군대를 새로 모집했고, 연대는 자격을 갖춘 지원병들로 구성되었다. 그러나 17세기 후반에 군대는 상비군이 되었으며, 훈련을 받지 않은 신병을 정기적으로 모집하여 일정 수준의 병력을 유지했다. 왕은 군대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신병과 돈을 제공했고, 그리하여 대령과 대위의 소유권은 어느 정도 제한되었다.

전투 자체는 종래의 방식대로 치러졌지만, 병사들은 과거에 용병들이 그랬듯이 시골지역을 약탈하지는 않았다. 그 당시 사람들이 대체로 그전처럼 전쟁의 영향을 많이 받지 않은 것도 다행이었다. 전쟁은 왕의 책임이었고, 직업군인들은 정기적으로 마련된 방침에 따라 전쟁을 치렀다. 이처럼 질서정연한 상비군의 전쟁을 토대로 그 다음 단계의 커다란 발전이 이루어졌다. 즉 무장국가가 등장한 것이다. 사회현상으로 나타난 중산층의 반란은 군대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프랑스 혁명과 육군의 발전

프랑스 혁명은 육군의 발전에 가장 큰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프랑스는 몇 개월 동안 100만 명 이상을 동원했는데, 고대 페르시아 시대 이후 그렇게 많은 군인이 존재했던 적은 없었다. 이러한 인력징발은 그때부터 거의 보편화된 징병제도의 선구가 되었다. 이처럼 국가가 무장하는 사회현상은 전쟁에 엄청난 변화를 일으켰다. 과거의 직업군인이 채택했던 전술과 전략은 징집된 군대의 새로운 요구사항에 부응하기 위하여 재검토할 필요가 있었다. 무장한 국가의 또다른 특징은 시민 각자의 애국심과 개인주의에 호소하는 것이었다.

군대에는 모든 사회계층이 뒤섞여 있었다. 귀족과 농민의 오래된 차별은 사라졌다. 나폴레옹 자신도 무명의 존재에서 장군까지 올라갔고, 이러한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누구나 지휘관이 될 수 있다고 부하들에게 말하곤 했다. 지휘관이 반드시 귀족 출신이어야 할 필요는 없었다. 실제로 나폴레옹 휘하의 원수들 중에는 옛날 프랑스 군대에서라면 중사 계급 이상으로는 결코 진급하지 못했을 사람들도 많이 끼어 있었다.

육군의 장교들도 처음에는 주로 전투부대의 장교들로 구성되었으나, 전문성을 보강하기 위한 참모장교단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최초의 참모장교단은 1806년에 프로이센의 게르하르트 폰 샤른호르스트 장군이 창설했다. 독일이 통일되자, 이 참모장교단은 매우 효율적인 독일 참모본부가 되어 다른 모든 지휘체계의 본보기가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무렵에는 모든 주요 군대에 참모사령부가 설치되어 있었다.

20세기 이후

20세기에 많은 근대국가가 성립되고, 민주주의 정부와 사회주의 정부가 수립되자, 재산이나 세습에 바탕을 둔 직업장교 계급은 더욱 빨리 사라지는 경향을 보였다. 군사무기가 기계화하기 시작한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육군에서 오랫동안 명성을 유지했던 기병은 의식용 외에는 거의 소멸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현대적으로 개량된 전차가 기병의 자리를 대체했다. 육군을 지원하는 헬리콥터가 195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운영되면서 육군항공대가 발달했으며, 1960~70년대 베트남전에서는 공격전술에서도 큰 역할을 수행했다.

현대

군부독재국가를 제외하고는 국민이 선출한 민간인 공직자들이 군대를 통솔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에는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육군부가 있다. 장교들은 하사관에서 진급하거나 사관학교에서 양성된다. 오늘날 대부분의 육군에서는 전투병과 장교와 참모장교가 각기 구분된다. 전투병과 장교는 순수한 전투부대를 지휘하는 사람들이고, 참모장교는 군대사령관을 보좌하는 장성이다.참모 장교들은 평시와 전시에 육군 활동을 계획하고 조정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육군과 해군 및 공군 참모는 대부분 합동참모본부로 통합되는 경향을 보인다. 미국 뿐 아니라 영국과 프랑스 및 러시아 같은 주요 군사강대국도 미국과 비슷한 군 지휘체계를 갖고 있다(→ 군대).

한국의 육군

한국의 육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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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육군은 1945년 12월 5일 서울에 설치된 군사영어학교에서 비롯되었다. 이 학교는 1946년 4월 30일까지 110명의 장교를 배출했는데, 이들이 남조선국방경비대의 주역을 담당했다. 1946년 6월 15일 남조선국방경비대는 조선경비대로 개칭되었고,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9월 1일 조선경비대가 대한민국 육군으로 개칭되었다. 한국의 육군은 6·25전쟁을 거치면서 10만 명에서 60만의 대군으로 성장했고 196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월남전에 참전하면서 정예군으로 단련되었으며 1970년대 중반부터 시작, 1980년대를 거쳐 1990년대에 이르러서는 꾸준한 현대화 계획 이행에 따라 새로운 체제로 크게 바뀌었다.→ 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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