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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유식설은 5세기초에 담무참이 〈보살지지경 菩薩地持經〉을, 구나발마가 〈보살선계경 菩薩善戒經〉을 번역함으로써 중국에 처음 소개되었다. 그러나 무착·세친의 본격적인 유식설은 6세기 이후 다음과 같은 3가지 통로로 전래되어 발전했다.
〈십지경론 十地經論〉에 의한 전개
북위의 선무제(宣武帝) 때인 508년 늑나마제·보리유지·불타선다가 뤄양[洛陽]에 와서 세친의 〈십지경론〉과 무착의 〈섭대승론 攝大乘論〉을 번역했다. 특히 〈십지경론〉에 서술된 아뢰야식설은 당시 중국에는 알려지지 않은 사상이었기 때문에 이 문헌이 소개된 뒤 이에 관한 연구가 급속히 번성했다. 이어 이 문헌을 근거로 삼는 지론종이 성립했다.
지론종은 남도파와 북도파로 분열했는데, 남도파에서는 아뢰야식을 청정무구한 진식으로, 북도파에서는 생멸을 겪으며 오염된 망식으로 간주했다. 북도파는 이내 세력을 잃고 남도파는 육조(六朝)시대부터 수나라 시대까지 번영했으나, 수나라 말기로부터 당(唐)나라 초기에 걸쳐 섭론종 혹은 화엄종에 흡수되었다.
〈섭대승론〉에 의한 전개
진제는 양(梁)나라 무제(武帝)의 초청으로 548년 건업으로 왔다가 중국 내부의 동란으로 각지를 방랑하면서 많은 문헌을 번역했다. 특히 무착의 〈섭대승론〉을 번역함으로써 교리적으로 체계화된 유식설이 중국에 알려지게 되었고, 그결과 〈섭대승론〉을 근간으로 삼는 섭론종이 성립했다.
섭론종 유식설의 특징은 아뢰야식을 청정한 면과 오염된 면이 함께 있는 진망화합식으로 간주하고, 다시 아뢰야식보다 심층에 순수무구한 아마라식이라는 제9식을 세운 점이다. 섭론종은 지론종의 북도파를 흡수함으로써 한때 번영했으나 당나라 시대에 법상종이 흥륭함으로써 급속히 쇠퇴해갔다.
〈성유식론 成唯識論〉에 의한 전개
중국 최대의 유식학파는 현장및 그의 제자 규기가 세운 법상종이다. 현장은 인도로 출발한 지 19년 만인 645년 장안에 귀국한 후, 인도에서 가져온 많은 경전과 논서의 번역사업에 전념하여 입적할 때까지 19년 동안 74부 1,335권에 달하는 번역을 완성했다고 한다. 그의 최대 목적은 스승인 계현을 통해 습득한 유상유식파 계통의 호법의 유식설을 중국에 소개하는 것이었다.
〈성유식론〉의 번역은 이런 목적의 집대성이라고 할 만한 것이었다. 이 논서는 세친의 〈유식삼십송〉에 대한 주석가 10명의 해설을 종합하여 바로잡은 것인데, 그중에서도 특히 호법의 해설이 정통설로 선양되어 있다. 규기는 이에 대한 주석서 〈성유식론술기〉와 〈성유식론추요〉를 저술하여 현장이 전한 유식설을 하나의 체계로 정리해냄으로써 법상종의 개창자로 간주된다. 이후 규기의 문하에서 혜소(慧沼)와 지주 등이 맥을 이어 호법의 유식설에 대한 연구를 한층 심화시킴으로써 법상종은 크게 흥륭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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