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출처 다음백과

인도의 유식설

다른 표기 언어

불교는 처음부터 유심론적 경향이 강한 사상이지만, 그런 경향이 극에 달하여 유가행파에 의해 정리된 것을 대승불교의 유식설이라고 한다. 이 학설이 성립된 요인의 하나로서 지적되는 것은 요가 체험이다.

〈대비바사론 大毘婆沙論〉 등에 의하면 이미 부파불교시대부터 유가사라고 불리는, 요가를 즐겨 수행하는 사람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의 선정 체험, 즉 "모든 사물은 마음이 지어낸 영상에 불과하다"는 체험이 유식설을 낳게 한 근본 원인이었다고 생각 된다. 그밖에 〈화엄경〉에 보이는 삼계유심설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 반야경과 중관파의 공사상을 허무주의적으로 해석하려는 생각을 시정할 헉가 제기되었다는 점, 윤회의 주체를 추구한 끝에 아뢰야식이라는 근본식을 발견했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유식설은 인도에서 3~4세기 무렵 미륵에 의해 주창되고 무착과 세친 형제에 의해 체계화되었다. 세친은 〈유식삼십송 唯識三十頌〉에서 30개의 게송으로 이제까지의 사상들을 정리하고, 식전변이라는 새로운 사상을 제시하여 유식의 교의를 한층 더 체계화했다.

그후에는 〈유식삼십송〉의 내용에 대한 해석을 둘러싸고 의견이 대립하여 유가행파는 크게 무상유식파와 유상유식파로 분열되었다. 인도 철학의 인식론에서는 외계에 존재하는 사물의 형상을 마음의 본래 상태와는 관계없이 그대로 인식할 것을 주장하는 무상식론과, 외계의 사물은 마음 속에 생긴 형상에 의해 추량된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유상식론이 대립했다. 유가행파의 기본적 입장은 '마음이 마음을 본다'는 것이기 때문에 유상식론에 속한다.

그런데 마음속 형상의 존재성을 둘러싸고 유가행파 안에서도 대립이 일어나, 마음 속의 형상을 비(非)실재요 허위라고 간주하는 무상유식파와 형상은 일방적으로 부정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실재한다고 생각하는 유상유식파로 구분되었다. 무상유식파는 미륵을 시발로 하여 무착·세친·안혜·진제로, 유상유식파는 진나를 시발로 하여 무성·호법·계현으로 이어졌다. 중국의 현장은 인도에 유학하여 계현에게 배움으로써 유상유식파의 맥을 이었다.

유식설이 인도 철학사에 공헌한 업적의 하나는 인명이라고 불리는 논리학을 발전시킨 점이다. 이미 미륵·무착의 시대부터 논리학은 고찰의 한 대상이었는데, 진나가 신(新)인명을 확립하면서부터 불교논리학은 급속도로 발전해갔다. 유상유식파의 사람들은 마음 속의 형상, 특히 언어를 중시하여 언어에 의한 인식이나 판단을 통해 진리에 접근하고자 했는데, 티베트 문헌에서는 이들을 논리추종파라고 호칭하고 있듯이 주로 논리학에 전념했다. 이런 경향은 11세기에 활동했던 즈냐나슈리미트라(Jñānasrῑmitra)나 라트나키르티(Ratnakirti)에 이르기까지 계속된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출처

다음백과
다음백과 | cp명Daum 전체항목 도서 소개

다양한 분야의 전문 필진으로 구성. 시의성 이슈에 대한 쉽고 정확한 지식정보를 전달합니다.

TOP으로 이동
태그 더 보기


[Daum백과] 인도의 유식설다음백과, Daum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