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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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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미상 |
요약 5세기에 활동한 도릴라이움의 주교.
네스토리우스교에 반대한 것으로 유명하다.
칼케돈 공의회(451)에서 교리를 작성한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다. 평신도 시절에 콘스탄티노플 전역에 자신의 유명한 저서 〈논쟁 Contestatio〉을 보급하고 신자들에게 네스토리우스에 반대해야 한다고 호소함으로써 최초로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인 네스토리우스의 가르침을 공식적으로 비판했다(429). 그의 행위는 에페소스 공의회(431)에서 네스토리우스를 단죄하는 데까지 이어졌다.
448년 도릴라이움의 주교였던 에우세비오는 친구이자 콘스탄티노플의 대수도원장이었던 유티케스를 훗날 단성론(예수 그리스도가 하나의 본성을 지녔다고 주장한 이단)으로 알려지게 된 교리를 주장한 이단자로 고소했다(→ 유티케스). 단성론을 최초로 반대한 에우세비오의 고소로 인해 결국 유티케스는 콘스탄티노플의 주교 플라비아누스가 소집한 교회회의에서 면직당했고, 교황 레오 1세에게 파문당했다.
그뒤 449년 에페소스에서 열린 공의회(에페소스의 강도회의로 알려짐)의 조치로 직위를 되찾았으며, 에우세비오는 이 사건에서 맡은 역할 때문에 면직당했다. 그뒤 즉시 레오에게 호소하고 로마로 망명했다. 451년 칼케돈 공의회에 의해 복직되었고, 이 공의회를 위해 그리스도의 위격과 본성에 관한 고전적 정의들을 작성하는 일을 도왔으며, 이 정의들에 따라 유티케스는 추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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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도릴라에움의 에우세비오 – 다음백과, 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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