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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도니아의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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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슬라브 문학과 마찬가지로, 마케도니아 문학은 성 키릴루스와 성 메토디우스가 종교서적을 번역하고 이들의 제자인 성 클레멘트(916 죽음)가 오흐리드(당시에는 불가리아 영토)에 최초의 슬라브족 '대학교'를 세운 9세기에 시작되었다.

이 정통 종교문학과 더불어 경외서적인 이단적 보고밀 문학이 발달했다. 16세기에 고대 교회 슬라브어와 일상어가 융합되면서, 대중적인 다마스쿠스 문학이 발달했다. 〈다마스키니 Damaskini〉는 다마스쿠스의 학자들이 쓴 글을 번역한 것이다.

이 문학은 근대 마케도니아어로 씌어진 책이 처음 출판된 19세기초까지 지속되었다. 19세기초의 마케도니아 문학은 중세 클레멘트파(派)의 종교적 계몽운동을 충실히 모방한 것이었으므로 독창적으로 기여한 분야는 민속문학뿐이었다. 나중에는 콘스탄틴 밀라디노프가 독창적인 서정시를 썼으며, 동생 디미트리예와 함께 주목할 만한 전설집과 민요집을 편찬했다. 이 전설집과 민요집은 마케도니아 민족문학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마케도니아 민족의식과 마케도니아 문학의 발달은 19세기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로 제약을 받았다.

발칸 반도의 여러 나라들은 마침내 힘을 합하여 오스만 투르크에 대항했다. 이것이 1912~13년의 발칸 전쟁이다. 그러나 그들은 마케도니아 분할을 둘러싸고 내분을 일으켰다. 세르비아는 스코플례를 중심으로 오흐리드를 포함하는 북부 마케도니아 지방을 얻어 가장 좋은 몫을 차지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도 베오그라드의 중앙정부는 불가리아어와 가장 밀접한 관계를 가진 마케도니아어를 여전히 세르보크로아티아어의 남부 방언으로 생각했다.

1944년에 마케도니아가 유고슬라비아 연방을 이루는 별개의 공화국으로 수립된 뒤 비로소 마케도니아어는 공용어로 인정받았다. 이런 장애에도 불구하고, 특히 코스타 P. 미시르코프가 〈마케도니아 문학작품을 위하여 Za Makedonskite raboti〉(1903)와 문예지 〈바르다르 Vardar〉(1905 창간)를 통해 민족어와 문학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애쓴 결과 약간의 진전이 이루어졌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코스타 라친은 이러한 노력을 이어받아 주로 마케도니아어로 시를 쓰고, 1930년대의 문예지들을 통해서 마케도니아어 사용을 촉진시켰다. 콜레 네델코프스키 같은 일부 작가들은 정치적 억압 때문에 해외에서 작품을 쓰고 발표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유고슬라비아 공산 정부는 마케도니아어를 공식으로 인정하고 출판사 설립과 마케도니아어 교육을 장려했다.

학자인 블라제 코네스키를 비롯한 몇몇 사람들이 마케도니아어를 공식 문어로 표준화하는 작업을 맡았다. 민족의식과 그 표현을 별개의 문화적 주체성으로 보호하려고 오랫동안 애써온 마케도니아인들은, 전쟁이 끝난 뒤 고유 언어로 글을 쓰고 책을 펴낼 수 있는 자유를 얻게 되자 수많은 문인을 배출했다. 대표적 시인은 아초 쇼포프, 슬라프코 야네프스키, 블라제 코네스키, 가네 토도로프스키였다.

V. 일료스키를 비롯한 전쟁 이전의 극작가들도 계속 희곡을 썼고, 콜레 차슐레와 토메 아르소프스키 같은 새로운 극작가들이 연극계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지프코 칭고는 마케도니아에서 가장 유명한 산문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다.

국립 역사 박물관, 스코페(Skopje)에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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