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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54. 10. 7, 오렌지 자유국(지금의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있음) 스미스필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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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22. 2. 3, 남아프리카 연방 데웨츠도르프 |
국적 | 보어 |
요약 보어인(남아프리카에 이주한 네덜란드계 백인) 출신의 군인·정치가.
보어인 민족주의자들로부터 가장 위대한 영웅으로 존경받고 있다. 보어 전쟁(1899~1902) 당시 오렌지 자유국 군대의 총사령관으로 세계적으로 이름이 알려졌으며 또한 1914년의 보어인 반란을 주도했다(보어 전쟁). 젊은시절인 1860년대부터 소토족 전쟁에 참가했고 트란스발의 보어인들과 함께 독립을 위해 싸웠다(1880~81). 평화시에는 트란스발의 의회에서 일했으나 정치에 적극적이지는 않았다. 뒤에는 오렌지 자유국의 의회 의원을 지냈다.
보어 전쟁이 시작되자 민병대를 이끌고 참가했으며 뛰어난 전술과 대담한 군사 행동으로 얼마 뒤 오렌지 자유국 군대의 총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오렌지 자유국 영토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던 영국군에 대해 치고 내빼는 게릴라전을 사용했으며 혁혁한 전과와 기적과도 같은 탈출로 전설적인 인물이 되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영국에 항복하고 단 1일의 임기를 가진 오렌지 자유국의 대통령 대리 자격으로 베레니깅 평화조약에 서명했다(1902. 5). 1907~10년 오렌지 자유국의 농무장관으로 일했으며 남아프리카 연방 헌법의 기초를 세운 회의(1908~09)에도 참여했다. 총리 루이스 보타와 J. B. M. 헤르초크가 서로 불화를 빚자 웨트는 헤르초크 편에 가담해 1914년 국민당을 결성했다. 양파 사이의 반목은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뒤 독일령 남서아프리카를 점령하려는 보타의 결정에 웨트가 반대하면서 더 깊어졌다. 그는 반란을 꾀하다가 결국 체포되어(1914. 12) 반역죄로 6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1년간 복역한 뒤 풀려나 자신의 농장에서 조용히 지내도록 허락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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