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요약 왈론어로 쓴 문학 작품.
왈론어는 오늘날의 벨기에 영토인 에노·리에주·나뮈르·뤽상부르 및 브라반트 주 남부에서 쓰이는 프랑스어 방언이다. 일찍부터 왈로니아라고 불리던 이 지방은 1830년 벨기에 왕국이 세워지기 이전에는 부르군트 왕국과 스페인·오스트리아·프랑스·네덜란드의 지배를 잇달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현지 언어의 특성을 그대로 유지했다.
왈론 문학의 기원은 분명하지 않다. 9~11세기에는 라틴어가 당시의 유일한 지적 중심지였던 수도원을 지배했다.
〈성녀 율랄리아 찬가 Cantilène de Sainte Eulalie〉(900경)를 제외하고는 12세기 중엽에 이르러서야 이 고장의 일상어로 쓴 최초의 문학작품이 등장했다. 이 초기 작품들은 대부분 익명의 소책자였는데, 그중에서 거의 4,000개의 12음절 시행들로 이루어진 〈교훈시 Poème moral〉라는 상당히 긴 작품이 눈에 띈다. 그후 3세기 동안 왈론 문학의 특징은 현지의 역사와 종교적 소책자 및 희곡을 중시한 것이었다.
17세기초에 왈로니아(특히 리에주 지방)는 방언의 문학적 가능성을 의식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왈론어로 쓴 문학작품의 수가 늘어났다. 민중생활과 현지의 역사적 사건을 묘사한 시들이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 18세기에는 방언을 쓰는 영역이 더욱 넓어졌다.
리에주에서 오페라 코미크가 성공하자, 여기에 용기를 얻은 일부 작가들이 오페라 대본을 방언으로 쓰기 시작했다. 리에주 극단이라는 단체가 결성되어, 당장 성공을 거두었다. 19세기에는 방언으로 시나 그밖의 글을 쓰는 작가들이 더욱 늘어났다. 그들 가운데 중요한 사람은 샤를 니콜라 시모농, 프랑수아 바외, 니콜라 드프레쇼 등이다. 시모농과 바외는 방언문학에 섬세한 감정을 도입했지만, 최초의 위대한 왈론어 서정시인이라는 명예는 드프레쇼에게 주어졌다. 비슷한 시기에 일어난 중요한 사건은 1856년 12월 27일 리에주에서 왈론어 문학협회가 결성된 일이었다. 이 협회는 언어와 문학에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진정한 지역 아카데미가 되었다. 이때부터 왈론어로 쓴 시와 노래 및 희곡 작품의 수가 늘어났고, 외국의 주요작가들의 작품을 왈론어로 번역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19세기말에 이르자, 다양한 문체와 다양한 영감을 가진 많은 작가들이 왈론어 방언으로 글을 쓰게 되었다. 그러나 이 작가들은 대부분 일상생활을 묘사하기 위해 다소 교조적인 사실주의를 채택했고, 사회의 인습에 얽매인 편협한 태도를 유지했다. 왈론 문학은 독자층이 한정되어 있었지만, 20세기에 들어 새로운 길을 모색했다. 가장 두드러진 발전은 수많은 학자들이 참여한 방언연구분야에서 이루어졌고, 철자법과 문법규칙을 표준화한 것도 방언의 문학적 가능성을 넓히는 데 이바지했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문학과 같은 주제의 항목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