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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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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중세 이라크의 군사 및 상업 도시.

특히 우마이야 왕조(661~750) 때 중요한 역할을 했다.

702년 우마이야 왕조의 통치자 알 하자즈가 바스라와 쿠파의 중간 지점의 티그리스 강 서안에 세웠다. 원래 군부대 주둔지로 세운 이 도시는 알 하자즈의 시리아인 정예부대가 군기가 바로잡혀 있지 않은 이라크 병사들의 영향을 받아 흐트러지는 것을 막는 역할을 했고 그전부터 있던 두 국경도시의 검문소였다. 그는 이곳에 녹색 돔 알쿠바 알카드라 궁전과 마스지드 자미 대사원을 지었다. 뒤에 아바스 왕조의 칼리프 알 만수르(754~775 재위)는 이 둘을 본뜬 건물을 바그다드에 세웠다.

알 하자즈는 또한 와시트 주변의 척박한 땅에 관개와 경작을 권장하여 마침내 상당량의 곡물과 대추야자를 생산하게 되었으며, 과수원도 상당수 일구었다. 와시트는 8세기초에 가장 번성하여 이라크의 지방 중심지가 되었다. 알 하자즈가 죽은 뒤 주민의 대부분이 시리아인이었던 단일성은 사라지고, 투르크인·페르시아인·아람인·그리스도교도·유대인들도 살 수 있게 되었다. 이곳은 티그리스 강 유역에 자리잡고 있을 뿐 아니라 이라크 전역으로 통하는 도로망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조선업과 상업의 거대한 중심지로 발전했다.

이슬람교 신학자들과 〈코란〉 암송자들(쿠라)의 배출지로도 유명하다. 아바스 왕조가 다마스쿠스에서 바그다드로 수도를 옮긴 후에는 정치적 중요성이 떨어졌으나 그후에도 여전히 군사 요충지 역할을 했다. 15세기에 티그리스 강의 수로가 바뀌면서 와시트는 점점 쇠퇴하여 사라지고 말았다. 이때문에 17세기초 투르크의 한 지리학자는 이 도시가 사막 한복판에 있었다고 기록했다. 오늘날 학자들 사이에서도 이 중세도시의 정확한 위치에 대해서는 의견 일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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