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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325경, 프랑스 알마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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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382. 7. 11, 리지외 |
국적 | 프랑스 |
요약
프랑스의 로마 가톨릭 주교, 아리스토텔레스주의 학자, 경제학자.
(영). Nicholas Oresme.
그의 연구는 현대 수학·과학과 프랑스어 문체, 특히 과학 어휘가 발전하는 데 기초를 마련했다.
파리에서 신학을 연구했고 1348~56년 파리대학교 콜레주 드 나바르에서 장학생으로 공부한 뒤 개인지도교사로 일하다 1361년 사임했다. 프랑스 루앙의 참사회원(1362)과 참사회장(1364)을 지냈는데, 1363년 크리스마스 전야에는 교황 우르바누스 5세 앞에서 설교를 했다.
1370년 프랑스의 현명왕 샤를 5세의 궁정사제로 임명되었다.
샤를 5세는 조세의 적법성과 필수적인 지속성, 안정된 경화의 불가피성 등을 주장한 오렘의 이론에 따른 결과 재정문제에서 괄목할 만한 변화를 이룩했다(주화). 오렘은 경화를 발행권자가 정확도를 보증하는 일정한 무게의 귀금속으로 보았으며 경화는 공공의 것이기 때문에 왕은 경화의 기준·무게·합금비율을 바꿀 권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렘의 경제정책은 14세기에 널리 통용되던 채권과 지폐에 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샤를 5세는 서적과 정부를 도울 수 있는 지식인에게 특히 열렬한 관심을 갖고 있었던 까닭에 1375년경 오렘에게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을 번역해줄 것을 요청했다. 당시에 사용되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정치학〉·〈경제학〉의 라틴어판을 대본으로 삼은 그의 번역은 프랑스어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고 평가받는다.
1377년에는 리지외의 주교로 선출되어 이듬해 축성되었다.
수학분야에서 오렘은 해석기하학의 터전을 닦는 데 기여했다. 그는 표와 그래프 사이의 논리적 등치관계를 발견한 듯하며, 다른 변수의 값에 따라 값이 달라지는 가변량을 표시하는 데 그래프를 사용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대한 체계있는 이론적 기초는 나중에 르네 데카르트가 개발했다.
과학분야에서는 메르통의 정리(定理), 즉 등가속운동하는 물체가 일정 시간에 지나가는 거리는 그 시간의 중간 시점에 그 물체가 갖는 속도로 등속운동하는 물체가 지나가는 거리와 같다는 정리를 기하학적으로 증명함으로써 운동의 원리와 법칙을 다루는 운동학에 크게 이바지했다.
오렘의 〈천체론 Traité de la sphère〉·〈천상과 지상론 Livre du ciel et du monde〉에는 그의 독창적인 과학 개념들이 드러나 있다.
미래를 예언한다는 점성술의 주장과 마술에 반대해서 〈예언론 Livre de divinacions〉도 썼다. 그는 천체가 고정된 지구 둘레를 돌고 있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천체에 관하여 De caelo〉의 이론과 반대되는 이론을 가르쳤다. 오렘의 지구운동 이론은 코페르니쿠스보다 앞선 것이었다. 많은 찬사를 받은 논문 〈경화제도에 관하여 De moneta〉(1360경)는 경화제도의 기초를 파괴하려는 어떠한 시도에도 반대하는 것으로, 1484년에 초간되고 17세기에 다시 출간되었다.
이 저작 덕분에 오렘은 중세의 가장 위대한 경제학자로 일컬어진다. 1952년에 조지 윌리엄 쿠플랜드의 〈니콜 오렘과 점성가 : 그의 예언론 연구 Nicole Oresme and the Astrologers : A Study of His Livre de divinacions〉, 1965년에 찰스 존슨의 〈니콜 오렘의 경화제도론과 영국 조폐국 문서 The De Moneta of Nicholas Oresme and English Mint Documents〉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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