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출처 다음백과

오광대

다른 표기 언어 五廣大

요약 경상남도 낙동강 서쪽 유역과 남해안 지방에서 전승되는 탈춤.

오광대라는 명칭에 대해서는 등장인물의 수 또는 마당[科場]의 수가 다섯인 데서 유래했다는 설, 오행설(五行說)과 벽사 관념에서 비롯되었다는 설 등이 있다.

오광대가 시작된 곳은 초계(草溪) 밤마리(지금의 합천군 덕곡리 율지)라고 전한다. 낙동강은 1930년대까지만 해도 수심이 깊어 물건을 많이 운반한 곳으로, 낙동강가에 있던 밤마리는 인근 읍에서 나는 물산의 집산지이며 교역지였다. 특히 여름이 되면 거상들은 다른 지역과의 교역을 위해 난장을 트고, 직업적 유랑광대인 대광대패[竹廣大牌]의 오광대, 의령(宜寧)·신반(新反) 대광대패의 오광대, 진주 솟대쟁이패의 오광대, 남해 화방사(花芳寺)의 중매구패와 하동 목골 사당패의 탈놀이 등에게 비용을 주어 며칠씩 놀게 했다.

이들의 탈춤은 경상남도 각지에 퍼져 나갔는데, 낙동강을 경계로 하여 동쪽은 들놀음[野遊]이라 하고 서쪽은 오광대라 했다. 형성 시기는 문헌 자료에 남아 있지 않으므로 구전에 의거해 추정할 수밖에 없는데 구전에는 2가지가 있다. 즉 가산오광대가 1760년대 이전에 이루어졌다는 설과, 오광대가 1870~1900년대에 이루어졌다는 설이다. 전자는 각 지방의 탈춤이 독자적으로 성장한 시기를, 후자는 떠돌이탈춤, 특히 밤마리오광대의 영향을 받아들여 재형성·발전된 시기를 지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오광대의 주된 내용은 오방신장무(五方神將舞), 양반에 대한 풍자, 파계승에 대한 풍자, 한 남편과 처첩의 삼각관계에서 오는 비극, 잡귀를 물리치고 복을 기원하는 춤 등이다. 이 가운데 벽사의식무(辟邪儀式舞)인 오방신장무와 양반풍자 과장의 문둥이춤은 오광대에만 보이는 특징이며, 특히 양반풍자는 다른 탈춤에 비해 신랄한 편이다. 문둥이는 양반을 상징하는 인물인데 통영오광대에서는 원양반, 둘째양반 외에도 홍백(紅白)탈·먹탈·손님탈·비뚜루미탈·조리중 등 비정상적인 인물들을 등장시켜 양반의 추악한 모습을 폭로한다. 여기서 홍백은 두 아비의 아들이라는 뜻에서 한쪽은 붉고 한쪽은 희다. 먹탈은 어미가 부정한 짓을 하고 낳아서 온몸이 까맣다. 손님은 얼굴이 심하게 얽었기 때문에 천연두신의 이름을 붙였다. 비뚜루미는 몸이 뒤틀려 있다. 조리중은 중의 자식이다.

오늘날 초계 밤마리 대광대패 등 여러 떠돌이놀이패의 탈춤은 전하지 않고, 교역로를 따라서 소도시까지 분포되었던 토착적인 탈춤 가운데 진주·가산·마산·통영·고성의 오광대만이 대본이 채록되었거나 공연이 계속되고 있다. 1964년 통영오광대가 중요무형문화재 제6호로, 1970년 고성오광대가 제7호로, 1980년 가산오광대가 제73호로 지정되었으며 각 탈춤에서 배역을 맡고 있는 중요한 연희자들도 기·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출처

다음백과
다음백과 | cp명Daum 전체항목 도서 소개

다양한 분야의 전문 필진으로 구성. 시의성 이슈에 대한 쉽고 정확한 지식정보를 전달합니다.

TOP으로 이동
태그 더 보기
한국무용

한국무용과 같은 주제의 항목을 볼 수 있습니다.

다른 백과사전


[Daum백과] 오광대다음백과, Daum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