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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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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한반도 서남쪽에서 서남 방향으로 발달한 하천. 전라남도 담양군·장성군·광주광역시·나주시·함평군·무안군·영암군·목포시 등을 지나 서해로 흘러든다. 옛 이름은 금천·금강이었는데 고려 때 영산포라는 지명이 생겼고, 조선초 영산포가 크게 번창하여 강 이름도 영산강으로 바뀌었다. 영산강하구둑의 완공으로 남해만·영암만·도포만 등의 바다는 영산강 유역으로 편입되었고, 지면이 높은 갯벌은 농경지화 되었으며, 물은 바닷물에서 담수로 바뀌었다.

전라남도 담양군·장성군·광주광역시·나주시·함평군·무안군·영암군·목포시 등을 지나 서해로 흘러드는 강. 길이 138.75km, 유역면적 3,371km2이다. 발원지는 오랫동안 담양군 용면 가막골에 있는 용소(龍沼)라고 알려져 왔으나, 정부 발행의 <한국하천일람>에는 수문학적 관점에서 영산강 본류보다 더 길다고 측량된 제1지류 황룡강의 발원지인 담양군 월산면 용흥리 병풍산(屛風山 : 822m) 북쪽 계곡을 공식적인 발원지로 기록하고 있다. 역사문화적, 인문지리적으로는 수문학적 발원지와 구분하여 용소를 영산강의 시원지(始源池)로 보는 견해가 많다.

영산강은 발원한 후 장성호를 이루고 황룡강(黃龍江)이라 불리다가 장성읍 북서쪽에서 월계천(月桂川)을 합류한다. 광주광역시 광산구 박호동에서 평림천(平林川)을, 송대동 부근에서 극락강을, 나주시 금천면 북쪽에서 지석천(드들강)을 합해 남서쪽으로 흐른다. 이어 나주시와 함평군의 경계를 이루며 흐르다가 영산호를 지나 영산강하구둑의 배수갑문을 통과해 서해로 흘러든다.

영산강의 옛 이름은 통일신라 때 나주의 옛 이름이 금성(錦城)이었기 때문에 금천(錦川)·금강(錦江)이라 했고 나루터는 금강진(錦江津)이라 했다. 고려 때 신안군 흑산면에 속한 영산도(永山島) 사람들이 왜구를 피해 이곳에 마을을 개척했다고 하여 영산포(榮山浦)라는 땅 이름이 생겼으며, 조선초 영산포가 크게 번창하자 강 이름도 영산강으로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영산강 유역은 중생대말 백악기에 속하는 화강암과 쥐라기에 속하는 편상화강암으로 덮여 있다. 유역 하류부인 함평천·고막천의 일부지역에는 역암·사암이, 중상류 유역의 본류와 황룡강 중·하류부 및 지석천 하류 부근에 경상계 불국사층에 속하는 화강암과 쥐라기의 편상화강암이 분포되어 있으며, 황룡강 상류부에는 안산암·유문암 등이 주로 분포되어 있어 일반적으로 화성암류가 널리 분포한다.

영산강 유역의 충적평야는 화강암지역으로 저평한 구릉지를 이루고 토양배수가 불량한 편이나 상당히 비옥하여 평야의 대부분이 논으로 이용되고 있다. 주요평야는 나주시 일대의 나주평야,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정동 일대의 서석평야, 함평군 학교면 일대의 학교평야 등이며, 영산강 유역에 펼쳐진 전남평야의 핵심부를 이룬다. 유역 내에서는 쌀이 주로 나며, 나주의 배·복숭아·포도, 나주·송정 근교의 채소, 학교의 양파·마늘 재배가 유명하다.

영산강 유역은 예로부터 땅이 기름지고 바다와 통하는 교통의 요지로 청동기시대의 지석묘군이 영암군과 나주시 일대에서, 백제시대의 고분군이 영암군 시종면과 나주시 반남면 일대에서 발견되어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했음을 알 수 있다. 예로부터 이 강은 나주까지 조수가 밀려오는 감조하천(感潮河川)으로 바닷물의 피해가 많았고, 홍수의 위험성도 매우 높았다.

그러나 1976년에 나주댐·담양댐·장성댐이 완공되고, 1981년 12월에 목포시 옥암동과 영암군 삼호면 나불리 사이에 영산강하구둑이 완공됨으로써 이 일대는 가뭄과 홍수, 염해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영산강하구둑의 완공으로 남해만·영암만·도포만 등의 바다는 영산강 유역으로 편입되었고, 지면이 높은 갯벌은 농경지화되었으며, 물은 바닷물에서 담수로 바뀌었다(영산강지구농업종합개발사업). 그리고 바다로 흘러들었던 독립된 하천인 삼포강(三浦江 : 23.5㎞)·영암천(靈巖川 : 14㎞)·도갑천(道岬川 : 18㎞) 등의 하천이 모두 영산강의 한 지류가 되었다.

예로부터 수운이 발달해 목포-영산강(지금의 나주시 영산동) 간에 배가 왕래했으나 1977년 10월 마지막 배가 떠남으로써 수운기능이 완전히 중단되었다. 영산포는 농산물의 집산지로서 이 지역 경제의 중심지역으로 부상해 목포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급성장했다. 8·15해방 후에도 수운이 이루어져 20~30t급 어선이 20~40척 정박할 수 있었으나, 1970년대 상류의 댐 건설 이후에는 하상의 변동과 수량의 감소 및 영산강하구둑의 건설로 하류부의 수위가 낮아져 지금은 얕은 여울이 되었다.

영산강

저녁 노을을 붙잡는 영산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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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박종관, 새로운 관광수단으로서 지리여행의 콘텐츠 구성과 활용 방안, 대한지리학회지 제50권 제1호 2015(5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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