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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시

다른 표기 언어 麗水市
요약 테이블
위치 전라남도 남동부
인구 271,413 (2024)
면적 508.88㎢
행정구역 1개읍 6개면 20개동
사이트 http://www.yeosu.go.kr/

요약 전라남도 남동부에 있는 전라남도의 핵심 산업도시. 삼일동 일대에 조성되어 있는 여수국가산업단지는 세계 1위 규모의 석유화학단지이며, 이외에 수산업도 활발하다. 2000년대에는 관광산업이 성장하기 시작했다. 특히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와 함께 대중가요 <여수 밤바다>가 인기를 끌면서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면적 508.88㎢, 인구 271,413(2024).

대한민국 전라남도 남동부에 있는 시. 임진왜란 당시에는 해안 방어의 요충지였으며 오늘날은 호남 남부의 대표적 항구도시, 어업 중심지, 지역중심도시의 역할을 하고 있다. 행정구역은 돌산읍, 소라면·율촌면·화양면·남면·화정면·삼산면, 동문동·한려동·중앙동·충무동·광림동·서강동·대교동·국동·월호동·여서동·문수동·미평동·둔덕동·만덕동·쌍봉동·시전동·여천동·주삼동·삼일동·묘도동 등 1개읍 6개면 20개동이 있다(행정동 기준, 법정동 기준 51개동). 시청소재지는 여수시 시청로이다. 면적 508.88㎢, 인구 271,413(2024).

여수시 행정구역도

ⓒ 장길산/wikipedia | Public Domain

여수시 시내동지구 행정구역도

ⓒ Gloyacks/wikipedia | CC BY-SA 3.0

연혁

삼국시대 백제의 원촌현(源村縣)으로,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757년(경덕왕 16)에 해읍현으로 개칭되었다. 고려초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940년(태조 23)에 지금의 이름인 여수현(麗水縣)이 되었다. 조선시대에 들어 1396년(태조 5)에 당시 현령 오흔인이 조선 왕조에 불복했다 하여 현을 폐지하고 순천에 다시 병합시켰다. 1479년(성종 10)에 이곳 내례포에 전라좌도수군절도사영이 설치되어 전라도 해안 방어의 중심지가 되었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이 이끄는 수군 활약에 전라좌수영이 중심 역할을 했으며, 1593년에는 이곳에 경상·전라·충청 삼도수군통제영이 설치되었으나, 1601년에 통영은 경상도 거제로 옮겨갔다. 1895년에는 전라좌수영이 폐지되고, 1896년 돌산군(突山郡)을 신설함으로써 도서지역이 돌산군에 이관되었다. 1897년 순천군 여수면·율촌면·소라면·삼일면을 분리하여 여수군을 신설했다.

1914년 군면 폐합 때 돌산군이 폐지되고, 돌산군 두남면·남면·삼산면·화정면이 여수군에 편입되었고, 여수군은 여수면·화양면·소라면·율촌면·삼일면·쌍봉면으로 개편되었다. 1931년 여수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48년 여수지역에 주둔하던 국군 제14연대가 일으킨 이른바 여수순천10·19사건으로 이 지역과 주민들이 많은 상처를 입었다. 1949년에 여수읍이 시로 승격·분리되면서 나머지 지역은 여천군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1998년 여천군과 여천시를 통합하여 여수시로 출범했다. 2012년에는 여수세계박람회를 개최하면서 국제적인 도시로 발돋움했다.

인구

2000년 이전까지 전체적으로 인구가 계속 증가해온 지역이다. 1960년 8만 7,280명, 1970년 11만 3,651명, 1980년 16만 1,009명, 1990년 17만 3,164명으로 1960~90년 30년간 약 80%의 인구증가를 보였다. 이는 이 지역이 남해안 일대의 어업 중심지이자 수산물 집산지로서 인구흡입력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0년 32만 4,217명을 정점으로 2005년 30만 1,389명, 2024년 27만 1,413명을 기록했다. 2012년 세계박람회를 개최하는 등 지자체의 노력으로 완만해지긴 했으나 감소추세는 지속되었다.

2024년 기준 가구수는 128,709가구, 가구당 인구는 2.11명이다. 행정동별 인구분포를 살펴보면 시전동(4만 3,339명)에 전체인구의 약 11.8%가 분포하며, 인구분포가 가장 적은 곳은 묘도동(1,107명)이다. 면 단위에서는 소라면(2만 1,823명)에 인구분포가 가장 높게 나타난다(2024).

연혁

삼국시대 백제의 원촌현(源村縣)으로,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757년(경덕왕 16)에 해읍현으로 개칭해 승평군(昇平郡:순천)의 영현을 삼았다. 고려초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940년(태조 23)에 지금의 이름인 여수현(麗水縣)으로 고쳤다. 1018년(현종 9)에 순천의 속현으로 병합되었다가 1350년(충정왕 2)에 다시 여수현으로 독립했다.

조선시대에 들어 1396년(태조 5)에 당시 현령 오흔인이 조선 왕조에 불복했다 하여 현을 폐지하고 순천에 다시 병합시켰다. 1479년(성종 10)에 이곳 내례포에 전라좌도수군절도사영이 설치되어 전라도 해안 방어의 중심지가 되었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이 이끄는 수군 활약에 전라좌수영이 중심 역할을 했으며, 1593년에는 이곳에 경상·전라·충청 삼도수군통제영이 설치되었으나, 1601년에 통영은 경상도 거제로 옮겨갔다. 1725년(영조 1)에 여수를 도호부로 승격시키고 전라좌수사를 겸하게 했으나 1년 만에 폐지했다.

1895년에 종래의 병영·수영·진영·진보를 폐지함에 따라 전라좌수영이 폐지되고, 1896년에는 돌산군(突山郡)을 신설함으로써 도서지역이 돌산군에 이관되었다. 1897년에 순천군의 여수면·율촌면·소라면·삼일면을 나누어 여수군을 신설하게 되어 여수군이 분리·독립했다.

1914년 군면 폐합 때 돌산군이 폐지되고, 돌산군 두남면·남면·삼산면은 그대로, 화개면과 옥정면은 화정면으로 통합되어 여수군에 편입되고, 여수군의 여수면·화양면은 그대로, 덕안면·구산면이 소라면으로, 율촌면·구산면이 율촌면으로, 삼일면과 돌산군 태인면 일부가 삼일면으로, 덕안면·쌍봉면이 쌍봉면으로 통합되었다. 1931년 여수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48년 여수지역에 주둔하던 국군 제14연대가 일으킨 이른바 여수순천10·19사건으로 이 지역과 주민들이 많은 상처를 입었다. 1949년에 여수읍이 시로 승격·분리되면서 나머지 지역은 여천군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1998년 여천군과 여천시를 통합하여 여수시로 출범했다.

자연환경

소백산맥의 말단부에 해당하여 높은 산은 없으나 천성산(460m)·호랑산(460m)·고락산(335m)이 이어져 있고, 시내 곳곳에 봉화산(422m)·호암산(280m)·마래산(385m)·장군산(325m)·구봉산(389m)·종고산(199m) 등이 솟아 있다.

남해안에 접해 있는 시의 남부와 동부는 해안선의 드나듦이 복잡하고, 대경도·소경도·야도·풍락도·노량도 등 여러 섬들이 천연방파제 구실을 하고 있다. 시의 북서부 호랑산에서 발원한 연등천은 남동쪽으로 흘러 여수만에 유입한다. 하천 상류 일대에는 좁은 충적평야가 분포하나 중류와 하류 일대에는 대부분 시가지가 조성되어 있다.

위도상으로 한반도의 남단에 위치하고 해양의 영향으로 겨울이 비교적 온난한 남해안형 기후구에 속하며 비가 많다. 연평균기온 13.9℃ 내외, 1월평균기온 1.6℃ 내외, 8월평균기온 25.9℃ 내외, 연평균강수량 1,413.3㎜ 정도이다.

여수시 전경

여수시 해안선 부근과 오동도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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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2000년대까지는 전체적으로 인구가 계속 증가하는 지역으나 이후 점진적인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연도별 인구추이는 1960년 8만 7,280명, 1970년 11만 3,651명, 1980년 16만 1,009명, 1990년 17만 3,164명으로 1960~70년에 30.2%, 1970~80년에 41.7%, 1980~90년에 7.5%씩 각각 증가했다. 이는 이 지역이 남해안 일대의 어업 중심지이자 수산물집산지로서 인구 흡입력이 크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2000년 32만 4,217명을 정점으로 증가세가 꺾인 이후 지속적인 이농, 이어현상과 출산율 저하에 따라 인구 감소 추세를 보여왔다.

2005년 30만 1,389명, 2010년 29만 5,878명, 2015년 29만 168명을 기록하면서 감소 추세가 계속된 가운데, 2024년 기준 27만 1,413명으로 집계되었다. 가구수는 128,709가구, 가구당 인구는 2.11으로 가구당 인구수도 줄어드는 추세이다. 남자가 13만 9,685명(50.85%), 여자가 13만 4,810명(49.15%)로 성비는 103.45를 보이고 있다. 행정동별 인구분포를 살펴보면 시전동(4만 3,339명)에 전체인구의 약 11.8%가 분포하며, 인구분포가 가장 적은 곳은 묘도동(1,107명)이다. 면 단위에서는 소라면(2만 1,823명)에 인구분포가 가장 높게 나타난다(2024).

산업과 교통

총경지면적 112.32㎢ 가운데 논 43.92㎢, 밭 68.40㎢이며, 경지율은 22.5%이다(20066). 경지면적은 계속해서 감소하고 있으며 전라남도 경지율(65.6%)보다 낮다. 농가수는 1만 2,782가구로 전체가구의 12.5%를 차지한다. 주요농산물은 쌀·보리 외에 콩·고구마·감자 등이며 무·배추·마늘·파·양파 등의 채소류도 생산한다.

특용작물로 참깨를 생산하며, 미평동에서는 느타리버섯을 많이 재배한다. 축산업으로 한우·돼지·개·산양·닭·오리 등이 사육되며, 양봉도 행해지고 있다. 임산물로 밤이 생산된다. 어업가구수 5,704가구, 어업인구는 1만 5,503명으로 전체가구와 인구의 5.5%, 5.2%를 각각 차지한다(2006). 어획고는 해상자원의 변화에 영향을 받아 매년 변화가 크나, 2006년 현재 8만 3,750t의 어획고를 올려 전라남도 어획량의 17%를 차지했다. 특히 어류의 비중이 커서 전라남도 어류어획량의 약 65%를 차지한다. 주요어종은 쥐치·갈치·조기·가자미 등이다. 어선은 6,381척을 보유하고 있으며, 동력선이 96.5%, 5t 미만 어선이 61.5%를 차지한다(2006). 한국 제2의 수산항이자 무역항인 여수항은 신항과 구항으로 나누어져 있다. 현재 신항은 화물을 주로 취급하고 구항은 수산물의 집산과 유통 및 연안항로의 기항지 역할을 하고 있다. 여수항의 연간 하역능력은 244만 4,000t에 이른다. 시내에는 총 314개 공장에 1만 6,035명의 종업원이 종사하고 있다(2006). 1983년에 수산물 가공을 위해 오천동에 쥐치가공과 그밖에 어유·사료 등을 생산하는 오천공업단지가 준공되었고, 업종별로는 음료·식료품 제조업이 51.2%를 차지한다. 상설시장 7개소가 있으며 수산물은 수산물공판장을 통해 유통된다. 전라선이 시의 중앙을 따라 동서로 지나며, 동부해안을 따라 여수역에 이른다. 순천-여천을 연결하는 국도가 연등천을 따라 북서-남동 방향으로 나 있고, 이 국도를 따라 순천시 서면 압곡리에서 남해고속도로와 연결된다. 여수-연도, 여수-직포, 여수-조발, 여수-거문도, 여수-부산 간 정기항로가 1일 왕복 12회로 운항되고 있어 남해안 도서지역 및 영남지역과의 교류를 원활히 해준다. 도로총길이 1402.22km, 도로포장률 54.6%이다(2006).

여수항

여수항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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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유적·관광

시내에는 국가지정문화재(국보 1, 보물 9, 사적 3, 천연기념물 1, 중요민속자료 1), 도지정문화재(유형문화재 3, 기념물 5, 무형문화재 2), 문화재자료 11점, 등록문화재 6점이 있다.

여수진남관

여수진남관(1718 재건), 국보 제304호, 전남 여수시 군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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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평동·둔덕동에 고인돌이 있으며, 성터로는 봉산동성터와 문수동의 괘락산성이 있다. 해안지역에 충무공과 관련된 유적지가 많은데, 군자동의 여수진남관(麗水鎭南館:국보 제304호)은 충무공 사후에 전라좌수영의 본영으로 창건되었으며, 고소동의 좌수영대첩비 및 타루비(左水營大捷碑墮淚碑:보물 제571호)에는 이항복이 이순신을 기리며 쓴 글이 새겨져 있다. 덕충동의 여수충민사(麗水忠愍祠:사적 제381호)는 충무공의 영혼을 모신 역사가 가장 오랜 곳으로 알려져 있다. 북부에 있는 종고산(鍾鼓山)은 싸움에서 이긴 이순신이 승전고를 울리자 온 산에 종소리와 북소리가 울려 그 이름을 지은 것이라 한다. 그밖에 군자동의 여수석인(麗水石人: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33호)과 남산동의 영당(影堂)이 있다.

오동도를 중심으로 한 여수시 동쪽 해상은 한려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수려한 해안자연과 조화된 유물·유적이 많다. 오동도는 여수시 동쪽으로 약 1km 거리의 해상에 있는 작은 섬으로 여수시 해안과 768m의 방파제로 연결되어 있다. 섬에는 동백나무·대나무 등 난대성 식물이 무성하고 철새가 많아 이 지방의 대표적인 관광자원이 되고 있다.

그밖에 수려한 해안경관과 검은모래로 유명한 만성리해수욕장이 만흥동에 있으며, 여수항 앞바다에 떠 있는 듯한 장군도에는 수중석성, 이량장군의 방왜축제비 등이 보존되어 있다. 종화동에는 오동도와 여수항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자산공원이 있으며, 돌산대교는 남산동과 돌산읍을 잇는 연륙교로 1984년 완공되었다. 매년 약 559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한다(2006).

교육·문화·의료·복지

전통 교육기관으로 여수향교·돌산향교가 있었다. 근대 교육기관으로는 1908년에 세워진 사립 경명학교가 최초이며, 1951년에 여수고등학교, 1952년에 여항중학교가 설립되었다. 2018년 기준 교육기관으로는 유치원 75개소, 초등학교 66개교, 중학교 27개교, 고등학교 15개교, 전문대학 1개교, 대학교 1개교, 대학원 1개교, 기타학원 1개교가 있다.

대학교육기관으로 한영대학, 여수대학교가 있다. 여수문화원에서는 〈여수읍지〉·〈호좌수영지〉를 발간하는 등 향토사 발굴에 힘쓰고 있으며, 매년 〈여수문화〉를 발간하고 있다. 문화시설로는 667석 규모의 시립현암도서관을 비롯해 시민회관, 종합경기장, 진남체육관, 한국방송공사(KBS) 여수방송국, 문화방송(MBC) 여수방송국 등이 있다.

향토축제로는 5월 3~7일에 열리는 진남제가 있다. 호국문화를 선양하고 향토의식을 드높이며 향토예술을 개발하기 위한 이 행사는 1967년 이후 매년 열리고 있다. 전야제와 가장행렬·영당풍어굿·명창경연·시조경창·민속놀이(농악·활쏘기) 등의 행사가 펼쳐지며 5월 5일에는 어린이 민속놀이 한마당이 열린다. 가을에는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여수지부 주관으로 여수예술제 및 청소년예술제가 열려 10월 한 달 동안 학생무용발표회, 백일장, 서예전, 음악회, 연극공연, 각종 전시회 등의 행사가 펼쳐진다.

대표적인 설화로 〈함양여씨유래전설〉·〈동백꽃유래전설〉·〈아기장수설화〉·〈토끼와 거북이설화〉 등이 전해지며, 민요로는 〈가래질노래〉·〈시집살이노래〉·〈화투타령〉·〈덜이덜롱〉 등이 전승된다. 2017년 기준 의료기관은 종합병원 3개소, 병원 6개소, 의원 151개소, 요양병원 8개소, 치과병원 77개소, 한방병원 1개소, 한의원 56개소, 부속의원 2개소, 보건소 관련 의료기관 41개소가 있다. 사회복지시설로는 아동복지시설 44개소, 노인복지시설 34개소, 장애인복지시설 12개소, 여성복지시설 5개소, 노숙인시설 1개소, 어린이집 153개소가 있다.

여수거북선축제

매년 5월, 이순신 장군의 호국 충절을 기리던 것이 여수거북선축제의 시작으로, 진남제를 현대적으로 변모시킨 행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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