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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수리벽화고분

다른 표기 언어 藥水里壁畵古墳

요약 남포직할시 강서구역 약수리에 있는 고구려 벽화고분.

부근에 유명한 강서삼묘와 덕흥리벽화고분을 비롯하여 수산리벽화고분·쌍영총·용강대묘·연화총 등 고구려 벽화고분이 다수 분포하고 있다. 1958년 북한의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굴·조사되었다.

널길[羨道]과 앞방[前室], 앞방 좌우에 2개의 벽감·용도·널방[玄室]으로 이루어진 두방무덤[二室墳]인데, 무덤의 방향은 남향이다. 벽감은 앞방 동서벽 바닥에서 50cm 높이 지점에 1㎥ 크기로 설치되어 있다. 앞방의 길이와 너비는 각 4m, 널방의 길이와 너비는 각 5m이다. 천장 구조는 앞방과 널방 모두 천장부가 서서히 안으로 휘어져 들어가다가 2단의 3각굄으로 마무리된 궁륭3각굄이다. 앞방의 서북모서리에는 제상을 설치했고 널방의 서북모서리에는 널받침[棺臺]을 놓았다.

화강암 막돌로 쌓은 묘실 내부에는 백회를 발랐다. 벽감과 용도천장부의 3각굄부분을 제외한 묘실의 벽과 천장부 전면에 벽화를 그렸으며 주제는 인물풍속사신으로 앞방에는 묘주인의 생전 생활장면을, 널방에는 사신을 그렸다. 앞방과 널방의 네 벽면과 모서리에는 자주색 안료와 묵선으로 기둥과 두공, 도리를 그려 널방이 목조건물의 내부인 듯 느껴지게 했다. 네 벽의 도리는 벽면을 위와 아래로 나누는 화면구획의 역할도 한다. 화면의 좌우구획은 괴운무늬[怪雲紋]에 의해 이루어진다.

앞방 남벽의 동측과 동벽전체, 북벽 동측 위쪽에 걸쳐서는 묘주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대형 행렬을 그렸으며 서벽과 남벽 서측 위쪽에 걸친 벽면에는 사냥장면을 묘사했다. 수레에 탄 묘주인을 포함하여 80명이 훨씬 넘는 인물들로 이루어진 행렬은 북벽 위쪽 가운데에 그려진 성곽을 향하고 있는데, 묘주인의 성주부임행렬로 추측된다. 행렬 끝부분의 개마갑주무사의 머리 위로는 봉황으로 보이는 서조 3마리가 날고 있다. 사냥 장면은 북을 치고 나팔을 불면서 사냥 나가는 모습과 사슴·범 등을 사냥하는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냥 장면 속의 산악과 기암은 포도송이와 같은 모습으로, 나무는 잎이 없이 가지만 있고 그 위에 새둥지가 얹혀 있는 형태로 묘사되었다. 이러한 사냥 장면은 고구려에서 해마다 봄에 열리던 대수렵행사의 한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추측된다.

북벽 가운데 위쪽에는 성벽 각면 중앙에 2층 문루가 있고 모서리에 망루가 있는 성곽을, 왼편에는 묘주인과 6명의 시종을 그렸다. 묘주인과 시종은 옷차림새와 몸크기를 다르게 하여 신분의 차이를 나타내었다. 남벽 아래쪽 널길 가까운 곳에는 북상투를 틀고 잠방이를 걸친 문지기장수를, 그 좌우로는 외양간과 여물 써는 장면을, 동벽 아래쪽에는 방앗간과 부엌, 서벽 아래쪽에는 마구간을 그렸다. 널방 북벽 위쪽에는 장방 안에 앉아 있는 묘주인 내외와 현무 및 북두칠성을 그렸고, 동벽 위쪽에는 청룡과 해, 서벽 위쪽에는 백호와 달, 남벽에는 주작을 묘사했다. 해는 원 안에 삼족오가 있는 모습으로, 달은 원 안에 두꺼비가 있는 형태로 묘사되었다. 사신 옆에는 각 방위신의 원형인 별자리가 그려져 있다.

묘실이 반지하에 구축되고 앞방에 딸린 감이 감실이 퇴화한 벽감의 형태를 띠고 있는 점과 널방벽화에서 차지하는 사신의 비중에도 불구하고 남벽 주작의 머리 표현수법이 고졸한 점 등으로 보아 무덤의 축조연대는 5세기초를 전후한 시기일 것으로 추정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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