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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

다른 표기 언어 ring , 斑指

요약 몸을 치장하는 장신구이면서 권위·충성의 상징, 사회적인 지위를 나타내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고리와 보석걸이, 홈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고리의 형태는 원형·반원형·십자 4각형·단순한 띠 등이 있다. 보석걸이는 보석을 박을 수 있도록 넓고 두꺼우며 원뿔·각뿔 모양, 여인·동물 형상, 꽃장식 등이 있다. 두툼한 부분에 패인 홈은 원형·타원형, 또는 실패 모양이며 고리 바로 위에 붙이거나 더 높게 만들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2짝의 고리로 되어 있는 것은 가락지라고 하며, 1짝으로 된 것을 반지라고 부른다. 주로 금·은·구리 등으로 만들었으며, 오늘날에는 다이아몬드·진주·루비 등 보석을 끼워 만들기도 한다. 초기 철기시대의 것으로 평안남도 강서군 태성리 널무덤 유적에서 은반지가 발견되었다.

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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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 따라서는 손가락뿐만 아니라 발가락에 끼기도 한다.

몸을 치장하는 장신구이면서 또한 권위·충성의 상징, 사회적인 지위를 나타내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상징주의). 기본적으로 반지는 3부분, 즉 고리와 보석걸이 및 그것을 끼우는 홈으로 이루어져 있다. 고리의 형태는 원형, 반원형, 십자 4각형, 단순한 띠 등이 있다. 보석걸이는 보석을 박을 수 있도록 넓고 두꺼우며 원뿔·각뿔 모양, 여인·동물 형상, 꽃장식 등이 있다. 두툼한 부분에 패인 홈은 원형·타원형, 또는 실패 모양이며 고리 바로 위에 붙이거나 더 높게 만들기도 한다.

또한 고리 끝에 붙은 핀 위에서 돌아가기도 하고 완전히 열려진 것도 있다.

가장 초기의 반지들은 둥근 모양의 금반지로 홈은 원형·타원형 또는 드물게 직4각형이며 형상을 음각·양각하여 장식하거나 단단한 돌로 세공한 형상이나 인장을 끼워넣었다. 이집트에서 반지는 다른 장신구처럼 연꽃, 이시스 매듭, 호루스(매의 머리 모습을 한 태양신)의 눈, 뱀, 독수리, 스핑크스, 갑충석과 같은 상징적인 형태를 새겼다.

헬레니즘 시대에는 홈이 홍옥수·석류석, 또는 납유리와 같은 천연 그대로 연마한 보석을 고정시키는 데 쓰였다.

로마 시대에는 동전 장식을 붙이거나 뱀 장식이 널리 유행했고 2개 고리가 나란히 붙어 있어 두 손가락을 고정시키는 것도 있었다. 비잔틴 시대의 가장 특징있는 반지는 고리가 정교하게 투각된 것이나 타원형 홈을 가진 반지였다.

튜튼족은 회전식 마름모꼴의 홈이 있고 위쪽 표면은 여러 종류의 다색유리질 재료로 장식된 반지를 만들었다. 스키타이와 켈트 예술의 영향을 받은 북유럽에서는 동물들이 엉켜 있는 모양의 금반지를 만들었다. 중세의 초기·말기와 고딕 시대까지 원뿔형으로 튀어나온 홈에 나뭇잎과 문장에 쓰이는 동물 형상이 장식되었다. 고딕시대 후기에는 6각형의 쌍가락지와 연인의 이름을 새긴 반지, 2개의 둥근 고리로 되어 있고 각각에 손 모양이 달려 있어서 둘을 한 손가락에 끼면 마치 악수하는 모습처럼 되는 반지 등이 유행했다.

르네상스기에는 엄지 손가락에 끼는 반지를 만들었는데, 이것은 건축 모티브에서 착상된 정교한 장식을 돋을새김했으며 에나멜, 작은 진주, 여러 색의 돌들로 장식되었다. 열리는 반지홈이 있는 반지는 작은 기념품을 담거나 혹은 밀라노의 풀덕 페졸리 박물관에 있는 에나멜 칠을 한 작은 심장 모형의 반지처럼 낭만적인 전통에 따라 독(毒)을 담기도 했다. 로마 교황의 커다란 반지나 '어부의 반지'(성 베드로가 고기잡는 모습을 그린 동금 반지)는 교황 문서의 인장으로도 이용되었다.

17~18세기에 반지는 다른 장신구처럼 보석으로 장식되고 반지홈은 길고 직4각형이 되었다.

그리스로마 원형에 영향을 받은 18세기말의 반지는 마노(瑪瑙) 또는 조각된 돌에 브릴리언트형으로 다듬은 다이아몬드를 둘러 장식했다. 19세기에는 다양한 종류의 반지가 있었으며 이들 모두 과거의 양식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보석홈에는 종종 외국에서 수입해온 새로운 광물질을 박았는데, 특히 에메랄드·루비·다이아몬드가 선호되었다. 인도에서 반지는 손가락뿐 아니라 발가락에도 꼈는데 이것은 아프리카의 여러 지역에서도 볼 수 있는 관습이다.

콜럼버스 이전의 아메리카에는 반지가 전혀 없었다.

한국에서는 2짝의 고리로 되어 있는 것은 가락지라고 하며, 1짝으로 된 것을 반지라고 부른다. 주로 금·은·구리 등으로 만들었으며, 오늘날에는 다이아몬드·진주·루비 등 보석을 끼워 만들기도 한다. 초기 철기시대의 것으로 평안남도 강서군 태성리 널무덤 유적에서 은반지가 발견된 바 있으며, 삼국시대의 무덤에서는 많은 금·은 반지가 껴묻거리로 출토되어 당시부터 성행했음을 알 수 있다.

고구려의 반지는 대체로 정교하지 못하고, 소박할 뿐만 아니라 출토예도 많지 않다. 평양역전 이실분 출토 은반지는 몸이 가늘고 고리 끝이 맞붙지 않아 임의로 신축할 수 있다. 강서군 보림리 소동 제12호분 출토 은반지는 윗면이 아랫면보다 넓고 능각(菱角)을 이루고 있다. 약수리 벽화고분의 금반지는 두께 0.5㎜, 너비 3㎜의 금판을 오려 만든 것으로 두께와 너비가 일정하지 못하며 가위로 자른 가장자리도 다듬지 않아 매우 거칠다.

안학궁지 제2호분에서는 청동줄을 타원형으로 장식을 한 반지가 출토되었다. 백제에서는 공주 금학리 고분군의 구리반지, 공주 우금리 고분의 은반지 8개와 금반지 1개, 담양 제월리 고분의 금동반지 1쌍이 발견되었는데, 거의 간소하고 조잡한 것들이다. 호화롭고 찬란한 유물이 부장된 무령왕릉에서도 반지는 발견되지 않고 있어 백제에서는 크게 유행하지 않은 듯하다. 신라는 상당히 많은 금·은 반지가 출토되었는데, 크게 2가지 형식으로 나눠볼 수 있다. 하나는 전체의 폭이 균일한 금판제로서 표면에 격자상(格子狀)으로 각선을 새긴 것이며, 다른 하나는 뒤쪽이 가늘고 안쪽은 넓게 한 것으로 앞면 가운데를 마름모꼴로 만들었다.

그리고 앞면에는 여러 가지 장식을 했는데 누금수법으로 다시 마름모꼴 돌기를 만들고 있다. 금·은·옥제가 있으며, 천마총, 금관총, 금령총, 호우총, 서봉총, 노서동 제138호분, 황오동 고분군, 황남대총, 황남동 제82호분 등지에서 발견되었다. 가야는 그 출토예가 드문데, 양산 부부총에서 남주인의 은반지 10개가 출토된 바 있다. 고려시대의 반지는 별로 남아 있지 않으나 상당히 유행했던 것으로 보이며, 조선시대에는 반지보다 가락지를 많이 애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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