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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 스케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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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초기의 스케이트는 동물의 뼈로 만들었다. 1848년 미국의 E.W. 부시넬이 장화에 쇠 날을 고정시킨 최초의 스케이트를 발명했다. 1864년 시카고 출신의 무용교사인 잭슨 헤인스가 춤동작을 응용한 스케이팅 기법을 선보였다. 1867년에 창설된 빈 빙상 클럽은 헤인스의 착상을 이용해 빈 스케이팅 방식을 개발했는데, 이것이 오늘날의 피겨 스케이팅이 되었다.
1892년 국제 스케이팅 연맹이 창설되었다. 1924년 제1회 동계 올림픽 대회 때부터 남녀 피겨 스케이팅과 남자 스피드 스케이팅이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다. 여자 스피드 스케이팅과 아이스 댄싱은 각각 1960, 1976년 동계 올림픽 대회 때 정식종목이 되었다. 19세기 중엽 아이스 하키의 인기가 높아졌고, 20세기에 놀이로서의 스케이팅이 널리 보급되었다.

아이스 스케이팅은 BC 1000년경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초기의 스케이트는 사슴·소·순록과 같은 동물의 다리뼈나 갈비뼈로 만들어졌다. 스케이트 날이 언제부터 금속으로 만들어졌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12세기말까지도 영국에서는 동물뼈가 사용되었다.

중세 이후 네덜란드의 개천에서는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도 스케이팅을 즐겼다. 영국에서는 17세기에 대중화되었고, 1742년에 에든버러에서 최초의 스케이팅 클럽이 창설되었다. 1740년대에는 영국의 군인들이 아이스 스케이팅을 북아메리카에 소개했다. 1776년경에는 프랑스 궁정에서도 유행하여 마리 앙투아네트까지 스케이팅을 즐겼고, 1781년에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오세르에서 스케이트를 탔다.

영국 최초의 속도경기는 1814년에 늪지대인 펜스에서 열렸고, 1823년에는 최초의 아마추어 경기가 열렸다. 1830년에 런던에서는 스케이팅(피겨 스케이팅) 클럽이 창설되었다. 1848년 미국 필라델피아의 E. W. 부시넬이 장화에 쇳날을 고정시킨 최초의 스케이트를 발명했다. 1860년대에는 뉴욕 스케이팅 클럽이 결성되었고, 1864년에 시카고 출신의 무용교사인 잭슨 헤인스가 유럽에서 춤동작을 응용한 스케이팅 기법을 선보였다.

1867년에 창설된 빈 빙상 클럽은 헤인스의 착상을 이용해 빈 스케이팅 방식을 개발했는데, 이것이 결국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퍼져 있는 피겨 스케이팅 방식이 되었다. 1868년 캐나다 최초의 스케이트장이 토론토에서 문을 열었고, 1877년에는 스위스 다보스에 스케이트장이 개장했다.

최초의 인공 스케이트장은 1876년에 런던에서 문을 연 '글래시어리움'이라는 사설 스케이트장이었고, 19세기가 끝날 때까지 더 큰 규모의 공공 인공 스케이트장이 잇달아 등장했다. 20세기초에는 오스트레일리아의 멜버른과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요하네스버그에서도 인공 스케이트장을 볼 수 있었다. 얼음 위에서 벌어진 초보적인 단체경기는 2세기부터 있었다고 전해지지만, 19세기에 이르러서야 스케이트를 신고 하키나 신티, 헐링처럼 상대 팀의 골에 공을 넣는 스포츠가 북유럽에 등장했다.

아이스 스케이팅은 영국 스케이팅 협회(1879), 미국 피겨 스케이팅 협회(1886), 캐나다 아마추어 스케이팅 협회(1888)에 의해 체계화되었다. 이 단체들은 그 사이 결성된 다른 나라의 단체들과 함께 1892년에 국제 스케이팅 연맹(International Skating Union/ISU)을 창설했고, 이 연맹은 그후 스피드 스케이팅과 아이스 댄싱 및 피겨 스케이팅을 관장하는 세계기구가 되었다. 1890년대에 스피드 스케이팅(남자)과 피겨 스케이팅의 세계선수권대회가 시작되었다.

1924년 동계 올림픽 대회가 시작될 때부터 남녀 피겨 스케이팅과 남자 스피드 스케이팅이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고, 여자 스피드 스케이팅과 아이스 댄싱은 각각 1960, 1976년의 동계 올림픽 대회 때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다. 19세기 중엽부터 아이스 하키의 인기가 높아졌고 1920년대부터는 순수한 스케이팅의 인기도 높아졌다. 20세기에 인공 스케이트장의 수가 늘어나 놀이로서의 스케이팅이 널리 보급되었다.(→ 스포츠 기록 : 아이스스케이팅, 올림픽 대회).

한국의 아이스 스케이팅

1908년 대한기독교청년회연맹(YMCA)의 현동순이 미국인 선교사 질렛으로부터 스케이트를 사서 타본 것이 효시이다.

처음에 일본인에 의해 알려지고 보급된 스케이팅은, 점차 유일한 동계 스포츠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최초의 전국 규모 빙상대회는 1920년 2월 8일 매일신보사 주최로 열린 전조선 스케이트 경기대회이며, 1923년에 동아일보사 평양지국 주최로 열린 대동강 빙상대회는 우리 손으로 개최한 첫 빙상대회였다. 피겨 스케이팅 경기는 1927년 이일·연학년 등 5, 6명이 구락부를 조직·보급한 것이 효시로 기록되며, 8·15해방 이전까지는 국내대회조차 가져보지 못할 만큼 일부에게 국한된 스포츠였다.

그러나 1936년 제4회 동계 올림픽 대회에서 한국인으로는 처음 국제대회에 출전한 김정연(金正淵)이 1만m경기에서 3위를 차지하면서, 비록 일제하였지만 동양인으로서는 최고의 성적을 기록했다.

8·15해방과 함께 각 단체들이 활성화되면서 빙상도 활기를 띠게 되어 조선빙상경기협회가 발족되었으며, 후에 국제빙상연맹에도 정식으로 가입하게 되었다. 1948년 조선빙상경기협회가 대한빙상경기연맹으로 개칭된 뒤 각종 대회를 신설하고, 국제대회에도 참가 국위를 선양했다.

한국이 태극기를 달고 처음 출전한 1948년 스위스 장크트모리츠의 동계 올림픽 대회 이래 올림픽 대회와 선수권대회에 꾸준히 선수단을 파견했으나, 그다지 좋은 성적을 거두지는 못했다. 그러나 동대문에 첫 실내 스케이트장이 개장되면서 빙상계가 중흥을 맞게 되었으며, 특히 피켜 스케이팅 부문에 활력을 불어넣게 되었다. 또 저변이 확대되면서 1968년 제10회 프랑스 그레노블 올림픽 대회부터 피겨 스케이팅 종목에도 선수단을 파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1971년 태릉의 국제 스케이트장이 개장되면서 선수의 기량이 급격히 향상되어 1972년 레이크플래시드 동계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김옥선이 여자 1,000m 스피드 스케이팅 종목에서 금메달, 1,500m에서는 동메달을, 또 500m의 최중희도 은메달을 목에 걸어 그토록 기다리던 세계무대 상위 입상이 실현되었다.

이후 1976년에 이영하가 제3회 남녀 주니어 빙상 선수권대회에서 종합우승으로 세계를 제패하고 1978년에도 이 대회에서 이남순이 여자부 1,500m에서 3위, 1979년 세계남녀빙상선수권대회에서 이영하가 500m에서 3위를 차지하면서 세계의 높은 벽을 무너뜨려갔다.

1986년 처음 창설된 동계 아시아 경기대회에서 배기태가 월등한 기량으로 1,000m 경기에서 금메달을, 쇼트 트랙에서는 은메달 2개, 동메달 5개를 따내는 성적을 거두어 급성장했음을 보여주었다. 배기태는 1987년 세계 남자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권대회 500m 경기에서 37초 04의 기록으로 금메달, 1988년에도 이 대회의 500m 경기에서 36초 89로 금메달, 1987~88 월드 컵 빙상대회에서 4차례 금메달, 1990년 세계빙상선수권대회의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금메달, 1990년 세계 남녀 스프린트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권대회에서는 종합우승을 함으로써 한국빙상사에 그의 이름을 영원히 남길 위업을 달성했다.

발전을 거듭해온 쇼트 트랙도 제15회 동계 올림픽 대회 시범종목에서 김기훈이 1,500m와 3,000m에서 금메달을 획득했고 이준호도 금메달을 획득했다.

1989년 동계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는 금메달 4개, 은메달 3개, 동메달 1개를 따내 국민에게 희망과 기대를 안겨주었다. 또 1989년 세계 쇼트 트랙 선수권대회에서 김기훈이 1,000m 종목에서 세계선수권대회 사상 첫 금메달을 획득했고, 1990년 동계대회에서는 이준호가 3,000m 종목에서 금메달, 1,000m 종목에서 동메달을 획득하여 국제대회 참가 8년 만에 세계 정상에 올랐다.

그러나 피겨 스케이팅은 국민의 인식 부족과 선수 저변확대가 미흡해 세계대회에서 중하위권에 머무는 저조한 성적을 거두고 있다. 1992년 프랑스 알베르빌에서 열린 제16회 동계 올림픽 대회에서 한국은 금메달 2개,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를 획득해 세계 10위라는 놀라운 신화를 만들어냈는데 스피드 스케이팅 남자 1,000m의 김윤만이 은메달을, 쇼트 트랙 남자 1,000m의 김기훈이 우리나라가 동계올림픽 대회에 출전한 이래 최초의 금메달을, 이준호가 같은 종목의 동메달, 남자 5,000m 계주에서 김기훈·이준호·모지수·송재근 조가 금메달을 획득하여 그 주인공이 되었다.

또한 제17회 릴리함메르, 제18회 나가노, 제19회 솔트레이크 시티 동계 올림픽대회에서 계속 금메달을 따내며 쇼트 트랙 강국의 입지를 굳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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