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출처 다음백과

승과

다른 표기 언어 僧科

요약 〈고려사〉에 의하면 승과제도는 1084년에야 비로소 3년에 1번씩 실시되었다고 했으나, 실제로는 일반 과거와 마찬가지로 지켜지지 않았다. 승과제도는 교종선과 선종선의 두 종류가 있었는데 승계는 원칙적으로 승과에 합격한 자만이 받을 수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숭유억불정책에도 불구하고 승과제도가 그대로 이어져 교종선과 선종선이 존재했다. 승과는 3년에 1번씩 실시하되 선종에서는 〈전등록〉·〈점송〉을, 교종에서는 〈화엄경〉·〈십지론〉을 시험하여 각각 30명씩 뽑았다. 그뒤 중종대에 폐지되었다가, 1550년 불교에 독실한 문정왕후와 보우의 힘으로 선종시와 교종시가 다시 실시되었다. 그러나 1565년 문정왕후와 보우의 사망을 계기로 도첩제가 폐지되면서 승과도 혁파되었다.

958년(광종 9) 귀화인 쌍기(雙冀)의 건의를 받아들여 과거가 생긴 이래 승과제도도 마련되었다. 〈고려사〉에 의하면 승과제도는 1084년(선종 1)에 비로소 삼년일선(三年一選), 즉 3년에 1번씩 정규적으로 실시되었다고 했으나, 실제로는 일반 과거와 마찬가지로 지켜지지 않았다.

승과제도는 교종선(敎宗選)과 선종선(禪宗選)의 두 종류가 있었다. 그런데 승계(僧階)는 원칙적으로 승과에 합격한 자만이 받을 수 있었다. 승계는 교종·선종 모두 대덕을 시발로 대사·중대사(重大師)·삼중대사의 순으로 승진할 수 있었는데, 그 위로 선종에서는 선사·대선사로 오를 수 있고, 교종에서는 수좌·승통까지 오를 수 있었다.

고려시대의 국사·왕사는 승통이나 대선사 가운데 덕망이 높은 자로 선정했다. 조선시대에는 숭유억불정책에도 불구하고 승과제도가 그대로 이어져 교종선과 선종선이 존재했다. 승과는 3년에 1번씩 실시하되 선종에서는 〈전등록 傳燈錄〉·〈점송 拈頌〉을, 교종에서는 〈화엄경〉·〈십지론 十地論〉을 시험하여 각각 30명씩 뽑았다. 그뒤 이 제도는 중종대에 폐지되었다가, 1550년(명종 5) 불교에 독실한 중종의 비(妃)이며 명종의 생모인 문정왕후(文定王后)와 보우(普雨)의 힘으로 선종시와 교종시가 다시 실시되었다. 그러나 1565년 문정왕후의 사망을 계기로 보우가 죽음을 당하고 도첩제가 폐지되면서 승과도 혁파되었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출처

다음백과
다음백과 | cp명Daum 전체항목 도서 소개

다양한 분야의 전문 필진으로 구성. 시의성 이슈에 대한 쉽고 정확한 지식정보를 전달합니다.

TOP으로 이동
태그 더 보기

법과 같은 주제의 항목을 볼 수 있습니다.

다른 백과사전


[Daum백과] 승과다음백과, Daum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