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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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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BC 339/338 |
국적 | 그리스 |
요약 그리스의 철학자.
BC 347년 아카데메이아의 창설자 플라톤이 죽자 뒤를 이어 원장이 되었다. 플라톤의 제자이자 조카인 그는 플라톤이 BC 361년 시칠리아 섬을 여행할 때 동행했으며, 숙부가 시라쿠사의 디오니시오스 2세 등의 정치 지도자와 교제할 때 함께 참석했다.
그의 철학 저작은 현재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으며, 다만 그의 저서 〈피타고라스의 수에 대하여 On Pythagorean Numbers〉에서 발췌된 긴 인용문과 다른 몇몇 단편 및 그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진술 일부가 남아 있을 뿐이다. 아카데메이아 초창기의 다른 계승자나 동시대인과 마찬가지로 그는 수나 수의 조합을 강조한 반면 관념을 중요시하지 않았다. 예컨대 〈피타고라스의 수에 대하여〉의 발췌문에서는 10이라는 수의 완전성 또는 특별한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종종 플라톤을 곡해한 것으로 비판받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보고에 따르면, 스페우시포스는 단일성과 다수성이 함께 나타나는 이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 '일자'(一者)와 '무규정적 이자(二者)'로 불리는 두 대립 원리로부터 모든 실재가 영원히 생겨난다고 주장한 플라톤 이론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동료들이 '일자'와 '이자'를 선과 악의 원리로 본 반면 스페우시포스는 여기에 도덕적 성질을 덧붙이는 데 반대했다.
또한 그는 숫자로 나타낸 부호를 사용하여 실재를 점차 더 높은 정신영역으로 고양되는 것으로 체계화했다. 그는 순수 수 또는 '수적인 것'의 영역과 물체 또는 '감각적인 것'의 영역 사이에 모든 구성 요소가 불멸성을 띠는 영혼의 영역을 끼워 넣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스페우시포스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을 가했지만, 동식물 생리학의 비교 연구서 〈유사성 Homoia〉에 대해서만큼은 아리스토텔레스 자신이 쓴 〈동물지 History of Animals〉와 호의적으로 비교·검토하고 있다. 〈유사성〉에서 스페우시포스는 분류와 정의(定義)는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모든 사물이 정의되지 않는 한에는 어떤 개별 사물도 정의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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