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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어트 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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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1603~1714년(올리버 크롬웰의 空位 기간 제외)에 걸쳐 영국을 통치했던 스튜어트 왕가 때 만들어진 시각예술품 양식.

이 기간의 특정 양식의 추세를 보면 제임스 1세 시절, 카롤링거 왕조 시절, 왕정복고시절, 윌리엄과 메리 그리고 앤 여왕 시절의 것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스튜어트 양식이라 할 만한 공통된 특징이 있다.

그 시대의 영국 예술가들은 독일과 플랑드르의 바로크 양식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지만 점차 이탈리아의 팔라디오주의(Palladianism)에 고취된 학구적 절충주의로 돌아서게 되었다. 오랫동안 그들은 유럽, 특히 이탈리아·플랑드르·프랑스 등지의 당시 예술사조(주로 바로크)에 주는 영감을 찾고 있었다.

제임스 1세(1603~25 재위) 치하의 예술은 엘리자베스 1세의 길었던 재위 기간 말년 무렵을 특징지은 고정된 것으로부터 충분히 회복되지 못한 과도기의 것이었고 새로운 양식이 성장하기까지는 20여 년이 걸렸다. 제임스 1세 치하의 가장 진보적 예술가는 이니고 존스로서, 왕실예술품 감정가였고 이탈리아 르네상스 양식의 궁중 건물을 다수 디자인했다. 화이트홀의 뱅퀴팅 하우스는 그의 유일한 걸작이다. 찰스 1세(1625~49 재위)의 통치시절은 정치적으로는 비참했지만 예술적으로는 고무적인 시기였다.

이니고 존스는 왕실건축가로 일하면서 스튜어트가의 가면을 여러 벌 디자인했다. 플랑드르의 화가 페테르 폴 루벤스가 영국으로 건너와 기사작위를 수여받고 뱅퀴팅 하우스의 천장을 정교하게 디자인했고, 또다른 플랑드르의 화가 안토니 반 데이크 경이 루벤스를 따라와 그후 2세기 동안 표본이 된 영국 초상화의 유형을 창조해냈다.

1660년 찰스 2세가 주로 프랑스에서 지낸 망명 생활을 끝내고 돌아온 후 프랑스식 취향과 아이디어가 영국 미술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찰스 2세 치하의 뛰어난 성과는 크리스토퍼 경의 지휘 아래 1666년 화재로 파괴되었던 런던을 재건한 일이다. 렌은 르네상스 양식과 이탈리아 바로크 양식 그리고 당시의 프랑스적 요소를 적절하게 배합한 개성있는 건축을 창조했으며, 조지 왕조시대(→ 조지 양식)에 일어난 일련의 반작용이 있기까지 그의 추종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왕정복고시대 궁중 초상화가였던 피터 렐리 경은 반 데이크의 양식과 거의 유사하나 더 피상적인 작품을 남겼다. 윌리엄과 메리 부처왕(1689~1702 재위), 그리고 앤 여왕(1702~14 재위)의 재위기간에는 주목할 만한 건축적 기념물들이 많이 세워졌고, 영국 장인의 기술이 성장하고 있음을 반영하는 훌륭한 가구와 여러 다른 장식 미술품이 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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