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요약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때 프랑스군이 참패한 전투(1870. 9. 1).
이 패배는 결국 프랑스 제2제정의 몰락을 초래했다. 전투는 뫼즈 강 연안의 프랑스 국경에 있는 스당 요새에서 마크 마옹 원수가 이끄는 12만 명의 프랑스군과 헬무트 폰 몰트케 장군이 지휘하는 20만 명의 프로이센군 사이에 벌어졌다(→ 독일사, 제2제정). 마크 마옹은 메스에 갇힌 프랑스 라인군을 구출하기 위해 나폴레옹 3세와 함께 샬롱쉬르마른에서 메스를 향해 북동쪽으로 진군할 예정이었다. 몰트케는 신문 보도를 통해 마크 마옹의 움직임을 미리 알고, 작센의 알브레히트 황태자를 지휘관으로 하여 새로 편성된 뫼즈군을 재빨리 북쪽으로 보내 마크 마옹의 앞길을 차단했다.
뫼즈 강 연안에서 벌어진 3차례의 소규모 전투(8. 29~31)에서 마크 마옹은 프로이센군에게 밀려 스당 요새로 물러났다. 마크 마옹이 한번 더 프로이센군과 싸워서 포위망을 뚫고 동쪽의 메스로 갈 것인지, 서쪽의 파리로 퇴각할 것인지 결정하는 동안, 몰트케는 프리드리히 빌헬름 황태자가 이끄는 프로이센 제3군을 움직여 스당을 완전히 포위했다.
그해 9월 1일 새벽에 마크 마옹이 다쳤기 때문에 프랑스군 지휘 체계에 커다란 혼란이 일어났고, 덕분에 프로이센군은 별다른 저항도 받지 않고 포위 작전을 수행했다. 그후 프랑스는 대규모 기병대까지 동원해 포위망을 뚫으려고 안간힘을 썼으나 수많은 사상자를 냈을 뿐 아무 성과도 얻지 못했다. 프로이센 포병대가 아침부터 내내 프랑스군 진지에 포격을 퍼부은 뒤, 오후에 총공격을 개시했다.
전세가 절망적이라는 것을 깨달은 나폴레옹 3세는 항복했고, 이튿날 아침 8만 3,000명의 프랑스 병사와 함께 포로가 되었다. 프랑스는 3,000명의 전사자와 1만 4,000명의 부상자를 냈고, 2만 1,000명이 행방불명되거나 사로잡혔다. 프로이센은 9,000명의 사상자를 냈다. 승리한 프로이센군이 파리로 진군하고 있던 중인 같은 해 9월 4일, 파리에서 민중 봉기가 일어나 제2제정을 무너뜨리고 임시 공화 정부를 세웠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세계사와 같은 주제의 항목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