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출생 | 1903. 5. 24, 서울 |
---|---|
사망 | 1978/1979 |
국적 | 북한 |
요약
극작가∙소설가. 노동자계급의 삶을 표현한 소설을 발표했다. 대표작으로 <투계>, <선생과 황태자> 등이 있다.
본명은 무현(武鉉). 송영은 아호이며, 송동량(宋東兩)·앵봉산인(鶯峯山人)·앵봉생(鶯峯生)·수양산인·석파·은구산 등의 필명을 사용했다.
송영은 일제강점기부터 분단 이후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정치적·문학예술적 실천을 꾸준히 견지해오면서 프롤레타리아(프로) 연극의 대중화에 앞선 흔치 않은 작가로 평가된다.
1917년 배재고등보통학교에 입학, 동기생인 박세영과 함께 소년문예구락부를 조직하고 〈새누리〉라는 잡지를 펴내면서 문학에 관심을 나타냈다. 1919년 배재고보를 중퇴한 뒤, 1922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초자(유리)공장의 견습공 등으로 일하기도 했다.
그해말 귀국하여 이적효·이효·박세영 등과 함께 문학그룹 '새누리'를 조직하여 마르크스와 레닌의 저작 등을 탐독했다. 이 모임이 발전적으로 해체되면서 결성된 염군사는 무산계급 해방문화의 연구와 보급운동을 표방한 본격적인 프로 연극운동의 선구단체였다. 송영이 염군사를 기반으로 조직한 극단 염군은 뚜렷한 실적을 남기지 못한 채 1924년까지 명맥만 이어가다가 1925년 파스큘라와 통합되면서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동맹(KAPF)의 결성으로 귀결되었다.
그해 송영은 단편 〈늘어가는 무리〉가 〈개벽〉 현상공모에 당선되면서 문단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단편 〈선동자〉(1926)·〈용광로〉(1926)·〈석공조합대표〉(1927) 등을 발표했다. 초기의 대표작인 〈석공조합대표〉는 평양에 있는 석공조합 대표인 창호를 중심으로 조합을 통한 노동자의 현실변혁의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이다.
송영은 KAPF 결성 초기에는 두드러진 활동을 보이지 않다가 1927년 제1차 방향 전환 이후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는 1930년 4월까지 KAPF의 서기국 책임자로서 조직 활동에 적극 참여했으며, KAPF 산하의 극단 메가폰과 신건설의 문예부원으로서 연극운동에도 적극 관여했다(→ 색인: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동맹). 1934년 이른바 '신건설사 사건'으로 불리는 KAPF 제2차 검거사태 때까지 프로 극단에 가장 많은 희곡을 제공한 KAPF 연극운동의 중추적인 인물이었다. 이 시기에 발표된 주요 희곡으로는 〈일체 면회를 거절하라〉(1930)·〈호신술〉(1931)·〈신임이사장〉(1934) 등이 있는데 풍자를 통해서 부르주아 계급의 허위성을 고발한 작품이 주를 이룬다.
송영은 이밖에도 1929년 〈조선문예〉 인쇄책임자, 1931년 〈문학창조〉 등을 주재하면서 박세영이 편집하던 소년잡지 〈별나라〉에 아동문학 작품을 발표했다. 또한 KAPF가 해산되고 파시즘이 강화되던 1930년대 후반, 즉 1937년부터 해방 직전까지 송영은 동양극장의 전속작가로 활동했다. 이 시기에 전조선전향자대회(1938)에 참가하고 조선연극문화협회 주최 연극경연대회에도 3차례나 참가했다. KAPF 해산 이후의 주요 작품으로는 〈황금산 黃金山〉(1936)·〈가사장 假社長〉(1937) 등이 있다.
1945년 8·15해방과 더불어 조선연극건설본부 위원장을 역임하고, 그해 9월 30일 이기영·한설야 등과 함께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동맹을 결성했으나 이 단체가 조선문화건설본부에 통합되자 결국 1946년 6월 월북했다.
이후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 중앙상무위원, 흥남지구화약공장의 흥남예술위원장직을 맡았으며 6·25전쟁 때는 종군작가로 참전하기도 했다. 1953년 김일성 항일무장투쟁전적지 조사단에 참가했으며, 이를 토대로 〈백두산은 어데서나 보인다〉(1956)를 발간했는데 〈밀림아 이야기하라〉로 각색된 이 작품으로 1959년 초대 인민상 계관인이 되었다.
이외에도 제2·4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1957, 1967), 조국전선중앙위원(1957), 조·소친선협회 위원(1958), 조선-인도네시아 친선협회 위원장(1958), 대외문화연락위원장(1959), 제4차 노동당 중앙검사위원(1961),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상무위원(1961)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1968년 조선-몽골 친선협회 상무위원을 마지막으로 공식활동을 마감했다. 송영은 김일성 일가를 다룬 작품으로 비판을 받기도 했으며, 정신질환을 앓다가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에서 활동한 시기의 작품으로는 〈인민은 조국을 지킨다〉(1947)·〈금산군수〉(1949)·〈강화도〉(1953)·〈불사조〉(1959)·〈분노의 화산은 터졌다〉(1960)·〈박연암〉(1968) 등 20여 편이 있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작가와 같은 주제의 항목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