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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왕

다른 표기 언어 宣王 동의어 대인수, 大仁秀, 발해 제10대 왕
요약 테이블
출생 미상
사망 830(건흥 13)
국적 한국, 발해

요약 대조영의 동생인 대야발의 4세손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재위기간중 대부분의 말갈 세력을 복속시켰다. 또 10세기초 거란이 진출하기까지 랴오둥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유지했다. 이와 같은 대외정복으로 발해는 영토를 크게 넓혀 최대판도를 형성했고 5경·15부·62주의 지방제도를 완비했다. 이리하여 선왕 시기에 발해는 중흥을 맞이했고, 당으로부터 해동성국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외교교섭도 매우 활발해 819년부터 1년 동안 16번의 사신을 당나라에 파견하기도 했다. 일본과의 관계도 활발해 사신 왕래가 빈번했다. 선왕이 죽고 대이진이 왕위를 계승했으나, 그 뒤로는 구체적인 기록이 전하지 않아 발해의 상황을 정확히 알 수 없다.

이름은 대인수(大仁秀). 대조영의 동생인 대야발(大野勃)의 4세손으로 알려져 있다. 3대 문왕 대흠무가 57년간 재위한 뒤 793년 죽자, 이어 대원의·성왕(成王)·강왕(康王)·정왕(定王)·희왕(僖王)·간왕(簡王)이 차례로 왕위에 올랐으나 별다른 치적을 남기지 못했다. 9대 간왕이 죽자 그의 종부(從父)였던 대인수가 즉위하여 왕계가 바뀌면서 분위기가 쇄신되었다.

그는 재위기간중 현재 흥개호 북쪽의 말갈 부락을 복속시키고 흑수말갈을 통제함으로써 대부분의 말갈 세력을 복속시켰다. 또 랴오둥[遼東] 지방에 대한 당의 지배력이 약화된 틈을 타서 랴오허 강[遼河] 유역까지 진출하고, 이곳에 목저주(木底州)와 현도주를 두었다. 이후 랴오둥 진출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져 10세기초 거란이 이곳으로 진출하기까지 랴오둥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계속 유지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활발한 대외정복으로 발해는 〈신당서 新唐書〉에 "해북의 여러 부족을 쳐서 크게 영토를 넓혔다"라고 기록한 것과 같이 최대판도를 형성했다.

또 이때 발해는 5경(京)·15부·62주(州)의 지방제도를 완비했다. 이리하여 선왕 시기에 발해는 중흥을 맞이했고, 당으로부터 해동성국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당시 발해는 당·일본과도 매우 활발한 외교교섭을 가졌다. 819~820년에 16번이나 당나라에 사신을 파견했으며, 그뒤에도 매년 사신을 보냈다. 더욱이 일본에서는 빈번하게 오는 발해 사신을 접대하는 비용이 막대했는데, 827년에는 12년마다 1번씩 사신을 받기로 할 정도로 서로간의 사신왕래가 빈번했다. 선왕이 죽고 대이진(大彛震)이 왕위를 계승했으나, 그뒤로는 구체적인 기록이 전하지 않아 발해의 상황을 정확히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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