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요약 고려는 태조초에 최고 정무기관으로 광평성·내봉성·내의성 삼성을 설치했는데, 이는 태봉의 구제도를 바탕으로 편성한 것이었다. 982년 내사성·문하성·어사도성 및 어사6관이 설치되고, 995년에는 어사도성이 상서도성으로 바뀌고, 어사6관을 상서6부로 개편함으로써 당제를 모방한 3성체제가 완성되었다. 그러나 내사성과 문하성이 합쳐 내사문하성이 되어 실제로는 2성체제였다. 1275년에는 중서문하성과 상서성이 합쳐져 첨의부가 되었으며, 이때 도병마사가 도평의사사로 개칭되면서 국가의 최고정무기관이 되었다. 이에 첨의부의 기능이 약화되어 3성체제는 거의 소멸되었다. 1369년 도첨의부가 문하부로 바뀌고, 조선시대에 도평의사사가 의정부로 개편되면서 의정부에 문하부까지 흡수됨으로써 3성체제는 완전히 소멸했다.
본래 당나라에서 발달한 제도로서, 조칙을 작성하는 중서성과 이를 심의하는 문하성 및 그것을 집행하는 상서성을 말한다.
고려는 태조초에 최고 정무기관으로 광평성·내봉성·내의성을 설치했는데, 이는 당제와는 별개의 것으로 신라관제의 영향을 받은 태봉의 구제도를 바탕으로 편성했다. 실제로 당제에 따른 3성6부제는 성종대에 성립되었다.
982년(성종 1)에 내사성·문하성·어사도성 및 어사6관이 설치되었다. 995년에는 어사도성이 상서도성으로 바뀌고, 이에 따라 어사6관을 상서6부로 개편함으로써 당제를 모방한 3성체제가 완성되었다. 그런데 당제를 고려의 사회여건에 맞추어 도입함에 따라 운영체제가 달랐다. 중국에는 3개의 관청이 각기 제 기능을 다하는 3성병립제였는데 반해, 고려에서는 내사성과 문하성이 합쳐져 내사문하성이 되어 실제로는 2성체제였다.
1061년(문종 15)에는 내사성이 중서성으로 바뀜에 따라 내사문하성은 중서문하성으로 되었다. 중서문하성은 국가의 정무를 의논하는 최고의 정치기관으로, 상서성은 결정사항을 실천하는 데 그쳤다. 즉 고려의 상서성은 중서문하성과 동등한 병렬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상하종속관계에 있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 도병마사와 식목도감 등의 합좌기구를 설치했다. 그러나 고려 중기 무인정권이 들어서면서 3성6부의 기능과 권한이 축소되었다.
원간섭기인 1275년(충렬왕 1)에는 중서문하성과 상서성이 합쳐져 첨의부로 되었으며, 이때 도병마사가 도평의사사로 개칭되면서 국가의 최고정무기관이 되었다. 이에 첨의부의 기능이 약화되어, 3성체제는 거의 소멸되어갔다. 1356년(공민왕 5)에는 자주성을 회복하고자 관제를 복구하면서 첨의부를 중서문하성으로, 삼사를 상서성으로 고쳐 3성체제로 복구하고자 했다. 그러나 강력한 도평의사사의 기능으로 인하여 이전의 3성체제로 환원되지 못했으며, 1362년에 다시 중서문하성을 도첨의부로, 상서성을 삼사로 개편했다.
1369년에는 도첨의부가 문하부로 고쳐지고, 조선시대에 도평의사사가 의정부로 개편되면서 의정부에 문하부까지 흡수되어 3성체제는 완전히 소멸하게 되었다.→ 상서성, 중서문하성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고려와 같은 주제의 항목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