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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 이전의 여러 사회주의 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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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페이비언 사회주의

마르크스주의는 유럽 대륙의 사회주의운동을 풍미했지만 영국에서는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1880년대에 급진적인 언론인 헨리 하인드먼은 엄격한 마르크스주의 원칙에 입각해 '사회민주주의 연맹'을 창설했지만 이 단체는 영국 사회주의운동의 주변에만 머물러 있었다. 시인 윌리엄 모리스가 자유주의-생디칼리슴의 이념에 입각해 세운 '사회주의자 동맹' 역시 유력한 세력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반면 비(非)마르크스주의 이념에 바탕한 페이비언 사회주의는 영국에서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페이비언 협회는 시드니 웹, 베아트리스 웹, 그레이엄 월러스, 시드니 올리비에, 조지 버나드 등 당시의 유명한 젊은 급진적 지식인들에 의해 1880년대에 조직되었다.

이 협회는 진보적이고 온건한 사회주의 형태로 발전했다. '점진주의의 필연성'을 확신하는 페이비언 사회주의자들은 결코 대중조직이 되려고 노력하지 않았고 자신들이 인간권력에 대한 실제적이고 겸손한 충고를 통해 사회를 변형시키는 활력있는 지식인 집단이기를 원했다. 매우 영향력 있는 기관지 〈페이비언 에세이스 Fabian Essays〉(1889~)에는 사회주의자이건 사회주의자가 아니건 간에 정책형성자에게 영향을 미친 사회입법과 개혁의 청사진이 담겨 있다. 쇼가 "사회주의자의 정책을 통과시키기 위한 정부 이면의 공작"으로 정의한 '침투'를 통해 페이비언 사회주의자들은 핵심 정치가, 공무원, 노동조합 간부, 지방의 정책형성자들에게 계획적·건설적 개혁입법의 필요성을 확신시키는 데 힘썼다.

비마르크스주의 경제학만큼이나 대륙 사회주의 전통에 근거한 이론을 폈던 페이비언 사회주의자들은 '전체 사회조직의 지속성을 해치거나 급작스럽게 변화시키지 않는' 새로운 질서를 추구했다.

생디칼리슴

프랑스의 노동조합주의에서 나온 생디칼리슴 운동은 파리 코뮌(1871)의 유혈사태가 끝난 뒤 재조직되었다.

의회와 정치활동이 무용하다고 생각하는 생디칼리스트들은 그들 자신의 조합으로 조직된 노동자들의 직접행동만이 원하는 사회주의로의 변형을 이끌어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페르디낭 펠루티에의 지도 아래서 '노동조합사무소 연맹'(1892년 설립되어 1902년 노동총회 연맹과 합병했음)은 국가를 마비시키고 조직노동자의 수중에 권력을 장악시키는 '총파업'을 통해서 노동의 해방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이념을 제시했다.

노동조합은 생산의 핵세포를 지도·경영했다.

생디칼리스트들은 수많은 지식인들을 그들 대열에 끌어들였고 이들 지식인들은 생디칼리슴과 정치적 노선을 통한 사회주의로의 진입을 거부하는 이유에 대해 철학적 기반을 제공하려 했다. 그들의 저작 가운데 가장 중요한 저서로 꼽히는 조르주 소렐의 〈폭력론 Réflexions sur la violence〉(1908)은 소렐 자신이 곧 극우파로 돌아섰음에도 불구하고 혁명투사들의 사상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길드 사회주의

길드 사회주의 전통은 제1차 세계대전 이전의 몇 년 동안 영국에서 발전했다.

임금제도와 이윤생산에 대해 사회주의자들이 가진 적대감을 공유하면서 길드 사회주의자들은 생디칼리슴에서 국가에 대한 불신과 생산자의 지배에 대한 강조를 빌려왔다. 그들은 길드로 조직된 독립된 생산자가 자신들의 고용상태를 관리하고 창조적인 일에 참여하는 중세로 거슬러올라갔다. 산업에서의 자치를 목표로 삼으면서 길드 사회주의자들은 산업조직·교회·노동조합·협동결사·지방자치단체에 자율성을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또 모든 사회집단은 위로부터의 통제 없이 자신의 특수한 기능을 수행해야 하며, 개인은 자신이 관심을 가지는 모든 기능집단을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능집단간의 협동은 국가에 의한 관리를 대체할 것이고 경찰의 보호와 같은 국가의 업무를 제한할 것이다. 국가는 모든 것을 포괄하는 주권자가 아니라 하나의 기능집단이 될 것이다.

길드 사회주의는 여러 사상가에게 기원을 두고 있지만 성숙한 길드 사회주의 학설을 발전시킨 사람은 뛰어난 옥스퍼드 명사인 G.D.H.콜이었다. 그의 초기저서인 〈노동의 세계 The World of Labour〉(1913)·〈산업에서의 자치 Self-Government in Industry〉(1917) 등에는 길드 사회주의 이론이 가장 잘 나타나 있다.

길드 사회주의운동은 대중의 지지를 널리 얻지는 못했지만 페이비언 사회주의의 관료적·집중적 경향과 대비되는 한에서 계속 영국의 노동운동의 근원적 이념으로 자리잡고 있다.

미국의 사회주의

미국에서 사회주의는 유럽만큼 유력하지 못했다.

그러나 1901년 사회당이 결성되었을 때 1만 명이었던 당원수는 1912년 15만 명으로 불어났고 같은 해 대통령 선거에서는 총 득표수의 6%에 해당하는 89만 7,000표를 얻기도 했다. 미국의 사회주의는 유럽 출신의 이민 인구에게 가장 강력한 뿌리를 두고 있지만 19세기의 유토피아적 식민지, 노예제 폐지론자, 노동조합주의자, 농업개혁가, 1880, 1890년대의 소외된 사회주의자 집단으로부터 큰 영감을 얻었다. 사회당의 전신인 사회노동당은 1877년에 설립되었지만 1890년 언론인이자 논객인 다니엘 드 리온이 참여함으로써 독특한 전망을 펼칠 수 있었다.

드 리온은 마르크스주의의 교조적 경향과 프랑스의 생디칼리슴 속에서 발전된 '노동주의'를 결합하려 했다. 그와 그의 추종자들은 노동조합원이 '시시한 판에 박힌 기업' 위로 올라서고 비밀투표와 산업전투를 통해 자본력과 성공적으로 경쟁할 수 있기를 바랐다.

사회노동당은 하나의 분파로 남아 있었으나 사회당은 유진 데브스의 지도를 받으며 대중운동으로 발전했다.

전 노동조합 관리였던 데브스는 투옥기간 동안 다양한 사회주의 작가의 작품을 읽으면서 사회주의로 전향했다. 데브스가 이끄는 사회당은 중앙집권화하지도 않았고 정치적으로 동질적인 것도 아니었다. 사회당은 개혁주의자, 혁명가, 정통 마르크스주의자, 그리스도교 목사, 지방자치단체 개혁가, 철도사업·기업활동을 증오하는 인민주의자, 그리고 저임금으로 노동을 착취하는 공장에서 형제애를 꿈꾸는 유대인 피복 노동자를 모두 받아들였다.

사회당은 주요한 이론적 성과를 내지는 못했지만 비(非)교조적 방법을 통해 미국에서 사회주의 이념을 전파하는 데 효과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미국 사회당은 제1차 세계대전 뒤에 쇠퇴했는데 마지막의 저명한 지도자는 노먼 토머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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