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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파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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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879. 8. 8, 멕시코 아네네쿠일코
사망 1919. 4. 10, 모렐로스
국적 멕시코

요약 사파타는 멕시코 혁명의 농민군 지도자로 농지개혁주의의 주창자이다.
1911년 농민 게릴라들을 이끌고 멕시코 혁명에 참가했다. 그러나 혁명 지도자 프란시스코 마데로와 토지개혁 문제로 대립하여 아얄라 강령을 발표하고 무장투쟁을 계속했다. 사파타의 부대는 정규전을 피하고 게릴라 전술을 구사했다. 1913년 2월 빅토리아노 우에르타 장군이 마데로를 쫓아내고 살해되었다. 멕시코 북부의 온건한 정치가 베누스티아노 카란사에 의해 우에르타는 1914년 7월 국외로 쫓겨났다. 우에르타가 쫓겨나자 사파타는 아얄라 강령의 수락을 요구했고 이 강령이 실현될 때까지 독자적으로 계속 싸울 것임을 경고했다. 사파타는 토지를 분배하기 위해서 토지위원회를 설치했다. 그는 농촌대부은행을 설립했으며 이것은 멕시코 최초의 농업신용조직이었다. 공화국 대통령으로 카란사가 선출된 뒤 카란사 측의 군인에 의해 사살되었다.

사파타(Emiliano Zapata)

ⓒ Beao/wikipedia | Public Domain

초기생애

사파타는 말을 훈련하고 파는 일을 했던 메스티소 혼혈인 농민의 아들로 17세 때 고아가 되어 동생들을 돌보아야만 했다.

1897년에 그는 농민들의 토지를 부당하게 독차지한 대농장주에 대해 농민들이 일으킨 항의사건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체포되었다. 석방된 뒤에도 계속 농민을 선동했으므로 군대에 징집당했다. 군에서 6개월 동안 복무한 뒤 지주의 말을 훈련시키는 일을 하는 조건으로 풀려났다. 1909년 이웃들이 그를 마을 수비대 대장으로 뽑았다. 사파타와 농민들은 지주들과의 협상이 실패로 끝나자 지주들이 차지하고 있던 토지를 무력으로 빼앗아 나누어가졌다.

북부지방의 지주인 프란시스코 마데로는 1910년 선거에서 독재자인 포르피리오 디아스에게 패배한 뒤 미국으로 도망갔으며 그곳에서 스스로 대통령임을 선언하고 멕시코로 돌아왔는데 사파타와 동료들은 많은 농민 게릴라들과 함께 마데로를 지지하기로 했다.

1911년 3월에 사파타의 작은 부대는 쿠아우틀라 시를 점령했고 수도인 멕시코 시로 가는 도로를 막았다. 1주일 후 디아스는 대통령직을 사임했으며 임시대통령을 임명하고 유럽으로 떠났다. 사파타는 5,000명의 부하를 이끌고 모렐로스의 주도인 쿠에르나바카에 들어섰다. 마데로는 의기양양하게 멕시코 시에 입성했다. 사파타는 그곳에서 마데로를 만나 토지소유제도를 에히도(ejido:이전에 존재했던 인디언의 공동토지소유제도)로 바꾸도록 임시대통령에게 압력을 넣을 것을 부탁했다. 마데로는 게릴라의 무장해제를 주장하면서 사파타에게 토지 보상을 제의했다.

사파타는 이 보상 제의를 거부하면서 마데로의 요구대로 자신의 부대를 무장해제하기 시작했으나 임시대통령이 게릴라를 소탕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하자 이를 중단했다. → 멕시코

아얄라 강령

마데로는 1911년 11월 대통령에 선출되었고 사파타는 그를 다시 만났으나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했다.

사파타는 스승인 오틸리오 몬타노의 도움으로 아얄라 강령을 준비했는데 이 강령에서 마데로가 혁명의 목표를 이행할 능력이 없다고 선언했다. 강령에 서명한 사람들은 혁명운동을 재개했고 선거를 할 수 있을 때까지 임시대통령을 임명하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대농장의 1/3을 유상으로 몰수해서 빼앗겼던 농민들에게 돌려줄 것과, 대농장주들이 이 계획에 반대하면 무상으로 몰수할 것을 약속했다. 사파타는 혁명의 구호로 '토지와 자유'를 내걸었다.

멕시코 혁명

전투중 사파타는 종종 아무런 배상도 하지 않고 대농장에 불을 질러 토지를 빼앗아 나누어주었다. 때때로 사형 집행과 재산 몰수를 명령했으며 그의 부대는 전쟁규칙을 항시 지키지는 않았다. 늘어진 콧수염, 냉철한 눈, 테가 넓은 커다란 모자를 쓴 독특한 용모를 지닌 사파타는 소박한 이상을 실천에 옮기려고 노력했던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사파타의 부대는 정규전을 피하고 게릴라 전술을 구사했다. 그들은 총을 어깨에 멘 채로 농사를 짓다가 전투가 시작되면 싸우러 갔고 전투가 끝나면 다시 농사를 지었다. 때때로 그는 수천 명의 부하를 거느렸으며 주(州) 도시에서 세금을 걷거나 부자들을 강탈하여 그들에게 보수를 지급했다. 무기는 연방군으로부터 빼앗은 것이었다.

1913년 2월 빅토리아노 우에르타 장군이 마데로를 쫓아내고 살해했을 때 사파타와 그의 부대는 멕시코 시 교외까지 진격했고 우에르타의 연합 제의를 거부했다.

사파타와의 제휴가 실패함으로써 우에르타는 북부의 게릴라 부대를 토벌하는 데 전투력을 집중할 수가 없게 되었다. 당시 멕시코 북부에는 온건한 정치가인 베누스티아노 카란사의 지휘 아래 새로운 독재자를 쫓아내기 위해 입헌주의자 군대가 조직되어 있었다. 마침내 우에르타는 1914년 7월 국외로 쫓겨났다.

사파타는 카란사가 이끄는 입헌주의자들이 자신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멕시코 시의 몇몇 지식인을 끌여들였는데, 그중에는 그의 이론가가 되었고 뒤에 농민당을 만들었던 안토니오 디아스 소토 이 가마도 있었다. 우에르타가 쫓겨나자 사파타는 입헌주의자들에게 아얄라 강령의 수락을 요구했고 이 강령이 실현될 때까지 독자적으로 계속 싸울 것임을 경고했다. 1914년 10월 카란사는 모든 혁명세력이 참가하는 회의를 소집했다.

북부지역에서 가장 유력한 부대를 지휘하고 있던 판초 비야는 멕시코 시가 적의 소굴이라는 이유로 참가를 거부했다. 회의 장소는 아과스칼리엔테스로 옮겨졌고 비야파와 사파타파가 모두 참가했다. 이 두 진영이 다수를 차지한 회의에서는 에울랄리오 구티에레스 장군을 임시대통령으로 임명하기로 합의했다. 카란사는 이 결정을 거부하고 자신의 정부를 이끌고 베라크루스까지 행군했다. 마침내 온건파(카란사파)와 혁명파(회의파) 사이에 전쟁이 터졌다. 11월 24일 사파타는 그의 군대(이당시는 남부해방군으로 불렸으며 병력은 2만 5,000명 정도였음)에게 멕시코 시 점령을 명령했다.

수도의 시민들은 왕궁을 침입하거나 부녀자를 범하지 않고 집집마다 찾아다니면서 먹을 것과 마실 것을 부탁하는 농민들을 보고 놀랐다. 2주일 후 사파타와 비야는 멕시코 시 교외에서 만났고 왕궁을 방문했다. 두 지도자는 민간대통령을 선출할 때까지 힘을 합쳐 싸울 것을 약속했고 비야는 아얄라 강령을 수락했다.

토지개혁

사파타는 토지를 분배하기 위해서 토지위원회를 설치했다.

그는 토지위원회가 정실에 치우치거나 지주에게 매수되지 않도록 감독하는 데 많은 시간을 쏟았다. 그는 농촌대부은행을 설립했으며 이것은 멕시코 최초의 농업신용조직이었다. 또한 모렐로스의 설탕산업을 협동조합 형태로 재편하려고 했다. 1915년 4월 멕시코에 있던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의 개인사절이 사파타를 만났다. 사파타는 윌슨 대통령이 대표 파견을 받아들일 것을 요청했으나 윌슨은 이미 카란사 정부를 인정하고 있었다(구티에레스가 이끄는 회의파 정부는 해산되었음). 그동안에도 전쟁은 계속되었다.

사파타는 그에게 합류한 직업군인들의 조언을 받으면서 푸에블라 시를 점령하고 여러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1917년 카란사의 장군들이 비야의 군대를 무찔렀고 사파타를 고립시켰다. 그뒤 카란사는 제헌회의를 소집했으나 사파타는 초청하지 않았다. 회의는 헌법안을 통과시켰고 카란사를 공화국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사파타를 만나본 미국의 신임 공사인 윌리엄 게이츠는 미국에서 여러 편의 글을 썼는데 그는 사파타가 통치하던 지역의 질서를 입헌주의자들이 지배하던 지역의 혼란과 대비했으며 "진정한 사회혁명은 사파타의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썼다.

이러한 글을 전해 들은 사파타는 "이제 나는 안심하고 죽을 수 있다. 마침내 그들은 우리가 정의를 실현했다는 것을 인정했다"라고 말했다. 얼마 뒤 사파타군 토벌을 책임진 카란사 정부군의 지휘자 파블로 곤잘레스 장군은 헤수스과하르도 대령에게 농민군에 가담하기를 원하는 것처럼 위장하고 모렐로스의 치나메카 대농장에서 사파타와 비밀회담 약속을 하도록 지시했다.

그곳에서 사파타는 매복한 카란사 측의 군인이 쏜 총에 맞아 죽었고 그의 시신은 쿠아우틀라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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