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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73. 10. 30, 멕시코 파라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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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13. 2. 22, 멕시코 시 |
국적 | 멕시코 |
요약 멕시코의 혁명가.
반(反)디아스 민주세력들을 규합하여 독재자 포르피리오 디아스를 축출하는 데 성공하고 멕시코의 대통령이 되었다(1911~13). 그러나 그의 중도적인 개혁노선이 유발시킨 보수파와 혁명파 양쪽으로부터의 반발을 제압하지는 못했다.
부유한 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메릴랜드 에미츠버그의 마운트세인트메리대학에서 수학하고(1886~88), 캘리포니아대학교에서 한 학기를 마친 다음 파리의 한 경영대학원에서 3년을 공부했다.
키가 작고 왜소하며 안색이 창백한 편으로 그리 호감을 주는 인상은 아니었고 채식주의자이며 절대 금주주의자, 유심론자였다. 마데로는 온건 민주주의 신봉자가 되었으며, 코아우일라 주에서 베니토 후아레스 민주구락부와 한 정당의 조직을 도와(1904~05) 주지사가 되려고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하지만 그는 포르피리오 디아스의 독재를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범국민적인 민주운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재빨리 깨닫고 이 목적을 위해 정권으로부터 독립적인 언론인들을 지원하고 정치적 조직화 작업을 독려했다.
디아스는 1908년 미국의 한 언론인에게 멕시코는 민주화의 준비가 되어 있으며 따라서 자기는 1910년에 물러날 작정이라고 말했는데, 이것이 부지중에 사태를 가속화시켜 이 선언이 있자마자 정치문제를 다룬 글들이 쏟아져나오고 정치적 요구가 한꺼번에 분출되었다.
그 가운데에서 그의 저서 〈1910년의 대통령직 계승 La sucesión presidencial en 1910〉(1908)은 엄청나게 팔렸는데, 이 책에서 그는 정직한 선거, 정치과정에의 대중참여, 그리고 디아스의 재선거부 관철을 주장했다. 1909년에 디아스가 생각을 바꾸어 1910년의 선거에 재출마할 의사를 피력하자 정치계는 더욱 달아올랐다. 마데로는 '재선반대당'의 결성을 지원하고 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어 "실질적인 참정권-재선불가"를 구호로 내세웠다. 그 광대극 같은 선거의 전야에 그는 반란을 선동하고 당국을 모욕했다는 혐의로 체포되었다.
보석으로 풀려난 그는 텍사스의 산안토니오로 피해 그곳에서 1910년 10월 '산루이스포토시 계획'을 발표하여 자신이 멕시코의 합법적인 대통령이라고 선언하고 11월 20일 무장봉기에 참여할 것을 촉구했다. 치와와에서 그의 지지자 파스쿠알 오로스코와 판초 비야가 반란정국를 유지시켰으며, 1911년 2월에는 마데로가 치와와에서 추종자들과 군대를 이끌었다.
군중들에 포위된 디아스 정부는 반군들과 협상에 착수했다. 하지만 반란은 계속 번졌으며, 오로스코와 비야가 시우다드후아레스를 점령하자(1911. 5. 10) 디아스는 조건부로 항복하고 대통령직을 사임했다. 외무장관 프란시스코 레온 데 라 바라를 수반으로 하는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1911년 10월의 대통령선거 결과는 마데로의 압도적인 승리였다.
그는 11월 6일 취임했으며 멕시코 전역에서 '민주주의의 사도'로서 환호를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데로의 통치는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비극으로 끝났다. 미숙한 정치력과 지나치게 낙관적인 이상주의가 장애가 되어 그는 지지자들의 다수가 다른 의도를 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멕시코는 이내 완전히 부패한 또 다른 정부를 갖게 되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마데로가 민주화정책을 우선시함으로 인해 일체의 변화에 반대하는 보수주의 세력과 광범위한 사회·경제 개혁을 고집하는 혁명분자들 양쪽으로부터 공격을 받게 된 점이었다.
그는 또한 보수계 신문의 적의에 찬 비판과 미국의 헨리 레인 윌슨 대사의 성가신 관여, 그리고 일련의 무장반란과도 싸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 과거에 마데로를 지지했던 베르나르도 레이에스가 그에 대한 최초의 반란을 지휘했는데 반란은 쉽게 진압되었다. 파스쿠알 오로스코와 전직 대통령의 조카 펠릭스 디아스의 지휘하에 보수진영 쪽의 반란이 2차례 더 일어났다가 진압되었지만 레이에스와 디아스는 형무소에서 마데로에 대한 음모를 계속 꾸몄다.
마데로는 2월 멕시코 시에서 일어난 군부반란으로 최후를 맞게 된다. 마데로는 빅토리아노 우에르타 장군을 믿고 정부군의 지휘권을 맡겼는데, 우에르타가 레이에스 및 디아스와 공모하여 마데로를 배신한 것이다. 대통령은 체포되어 감옥으로 이송되는 도중 호송병에 의해 암살당했다. 마데로의 죽음은 군부독재(이제는 우에르타 정권에 의해 구현됨)에 대항한 끊임없는 투쟁에서 혁명적 단결의 상징이 되었다.
멕시코 혁명의 민주주의 세력들은 그의 순국으로부터 막대한 영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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