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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개인이 사사로이 양성하여 부리던 병사.
일찍이 통일신라시대 말엽인 8세기 후반 이후 귀족들이 휘하에 사병을 양성한 일이 있었다. 신라 하대(下代)에는 정치적 실력과 군사력의 우열에 따라 누가 왕이 되는지가 결정되는 상황 속에서 여러 귀족이 재력을 기울여 문객(門客)을 모으고 모집한 유민(流民)이나 자기의 노들을 무장시켰다.
고려시대에는 1200년(신종 3) 최충헌(崔忠獻)이 금군 등 정예 군사를 모아 한국사에서 대표적 사병집단으로 알려져 있는 도방(都房)을 만들었는데, 도방은 최씨 무인정권의 가병(家兵)으로서 정권을 보호하고 유지하는 데 물리적 힘의 구실을 수행했다. 또한 최우(崔瑀) 이래의 무신 집권자들은 야별초 등 관군의 지휘계통을 장악한 뒤 사실상의 사병으로 만들어 자기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사사로이 부렸다.
고려말에서 조선초 사이에도 주요권력자들이 당시 관군의 주력을 이루고 있던 시위패에 대해 국가 기구를 거치지 않고 직접 징발권과 지휘권을 행사하여 사실상의 사병으로 부렸는데, 조선시대 1400년(정종 2)의 사병혁파는 바로 그 권리를 국가 기구로 돌리려는 조치였다. 이후에도 수양대군(首陽大君) 등과 같이 개인이 사병을 양성하는 일이 있었으나, 고려시대만큼 오랫동안 정치적으로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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