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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교전중인 적국의 선박을 공격할 수 있는 권한을 정부로부터 부여받은 민간 소유의 무장 선박.
대개 상선이다. 이런 관행은 옛날부터 19세기까지 모든 나라에서 이루어졌다. 사나포선의 선원은 공격권을 부여해준 정부로부터 보수를 받지 않는 대신, 나포한 화물이나 선박을 돈으로 환산해 분배받을 권리가 있었다. 그러나 사나포선은 정부로부터 위임받은 합법적 테두리를 벗어나 활동하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비합법적으로 바다를 항해하며 선박을 약탈하는 해적선과 사나포선을 구별하기가 어려워졌다.
16세기말 존 호킨스 경이나 프랜시스 드레이크 경 같은 영국의 사나포선 선주들은 그당시의 일반적인 정치상황에 따라 부추김을 받거나 제약을 받았다. 그러나 정규해군이 커지면서, 사나포선은 영국 해군부의 규제를 받기 시작했다. 그것은 선원들이 해군에서 복무하는 것보다 사나포선에 타는 것을 더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당시 네덜란드의 해적들과 프랑스의 위그노파 교도들도 사나포선 선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17세기 서인도제도에서 활동한 헨리 모건 경 같은 영국 해적들은 때로 정부의 위임을 받은 진짜 사나포선 선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1690년부터 됭케르크와 생말로에서 출항한 프랑스 사나포선들은 특히 영국 상선을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미국 독립전쟁 당시 미국에서는 1,000척이 넘는 사나포선이 이미 인가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해군을 신설하기가 어려웠다. 사나포선의 해적행위는 18세기를 거쳐 1812년 전쟁까지 계속되었다. 특히 쌍돛대 범선인 '양키호(號)'는 단독으로 500만 달러 상당의 영국 자산을 탈취하거나 파괴했다. 그러나 프랑스에서는 호위함이 효율적으로 활동하면서 사나포선의 전망이 어두워졌다.
1856년 영국을 비롯한 주요 유럽 국가들(스페인 제외)은 '파리 선언'을 통해 사나포선의 해적행위를 불법으로 선언했다. 미국 정부는 자국 해군의 규모가 작기 때문에 전시에는 사나포선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면서 이 선언에 따르기를 거부했다. 19세기말 미국 해군이 성장하고 사나포선의 해적행위가 전쟁의 초기 형태에 속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자, 미국도 마침내 사나포선을 폐지해야 할 필요를 인식하게 되었다. 1908년 스페인도 사나포선 금지조치에 동의했다.
1907년의 헤이그 평화회의에서 무장상선은 반드시 전함으로 등록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이 규정은 그후 국제법의 일부가 되었다. 무장이라는 말은 다양하게 해석되어왔지만, 어쨌든 애매모호했던 사나포선의 위상은 이것으로 분명히 확정되었다. 지금은 국가가 군사작전에 참여하는 모든 개장 선박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을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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