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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20세기까지 바이에른과 라인팔츠를 지배한 독일의 귀족가문.
이 이름은 바이에른 파어에 있었던 아이하흐 근처의 비텔스바흐 성(城)에서 따온 것으로 1124년 샤이에른 백작 오토 5세(1155 죽음)가 이곳으로 이사하여 자신의 이름을 비텔스바흐라고 부른 데서 유래했다. 아들 오토 6세는 독일 왕 프리드리히 1세를 주군(主君)으로 섬긴 뒤 오토 1세로서 바이에른 공작작위를 받았다. 비텔스바흐가는 1180~1918년에 바이에른을 다스렸다.
1214년 오토 2세가 결혼으로 라인팔츠를 손에 넣음으로써 비텔스바흐가의 권력은 바이에른 밖으로 뻗어가기 시작했다.
이 가문의 루트비히는 1294년 바이에른 공작이 되었고 1328년 루트비히 4세로서 신성 로마 황제가 되었다. 1329년 파비아 조약에 따라 루트비히 4세는 처음으로 비텔스바흐 영지를 분할하여 라인팔츠와 바이에른 상부 팔츠를 각각 형제의 아들인 루돌프 2세(1353 죽음)와 루페르트 1세에게 나누어주었다. 1353~90년에 유일한 통치자였던 루페르트는 1356년 라인팔츠 선제후가 되었다. 이 사이 바이에른의 나머지 지역을 보유한 황제 루트비히 4세의 자손들은 영지를 여러 번 분할했는데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1392년 잉골슈타트·뮌헨·란츠후트의 분가를 이룬 일이다. 그러나 3대가 지난 뒤 많은 분쟁을 거쳐 알브레히트 4세(1508 죽음)는 바이에른 공국을 재통합하고 장자세습제를 도입했다.
팔츠의 비텔스바흐가는 독일 왕 루페르트(1400~10 재위)를 배출했으나 영지를 계속 분할하여 수많은 분가를 이루었다. 1654년 스웨덴 왕이 된 카를 10세는 수많은 팔츠 분가 가운데 한 가문 출신이었다. 카를 11세와 카를 12세는 1718년까지 계속 비텔스바흐 왕국을 유지했다.
바이에른 공작 역시 1623년부터 선제후가 되었다. 바이에른 선제후 카를 알브레히트(1745 죽음)는 카를 7세로서 1742년부터 신성 로마 황제가 되었다. 그의 아들 막시밀리안 3세(바이에른의 요제프)를 마지막으로 비텔스바흐의 바이에른 분가는 1777년 가계가 끊겼다. 따라서 비텔스바흐가 출신인 팔츠 선제후 카를 테오도르가 1724년의 왕가 협약에 따라 바이에른을 상속했다. 1799년 그가 죽자 막시밀리안 4세(츠바이브뤼켄의 요제프 공작)는 팔츠와 바이에른을 다시 합치고 1806년 막시밀리안 1세로서 바이에른 왕이 되었다. 막시밀리안 1세의 자손들은 1918년 루트비히 3세가 퇴위할 때까지 바이에른 왕을 지냈다. 루트비히 3세의 아들로서 스튜어트 왕가 출신의 아내 덕분에 영국 왕위계승권을 갖게 된 루페르트 공(1955 죽음)은 히틀러에 대항해서 바이에른의 왕당파를 이끌었다. 막시밀리안 1세의 손자인 바이에른의 아달베르트 공, 그의 아들 루트비히 페르디난트, 그의 손자 페르디난트 모두 스페인 공주와 결혼했다(1856, 1883, 1906). 따라서 그들 가문은 스페인 왕위계승에 대해서도 부수적인 이해관계를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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