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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351, 밀라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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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402. 9. 3, 이탈리아 밀라노 근처 멜레냐노 |
국적 | 이탈리아, 밀라노 |
요약
밀라노의 지도자.
별칭은 Conte di Virt.
비스콘티 가문의 세력을 절정으로 끌어올렸고 이탈리아 북부 대부분을 통치했다.
형제 베르나보와 함께 밀라노를 다스렸던 갈레아초 2세 비스콘티의 아들인 그는 1360년 프랑스 왕의 딸인 발루아의 이사벨라와 결혼했다. 1378년 아버지가 죽자 그뒤를 이어 밀라노 및 그 주변 영토의 서부를 통치했고 활동의 중심지를 밀라노 남쪽 파비아에 두었다.
1382년 숙부 베르나보가 프랑스의 앙주 공(公) 루이와 군사동맹을 맺고 자기 딸 루차를 루이의 며느리로 들여보낼 계획을 세우자 비스콘티는 이 결혼이 베르나보의 입지를 강화하고 자신을 위협할 것이라 생각하고 이를 경계했다. 1385년 비스콘티는 베르나보를 습격해 그를 체포했다. 2개월 뒤 베르나보의 손녀 바이에른의 이자벨이 샤를 6세와 결혼해 프랑스 왕비가 되었으므로 비스콘티와 베르나보 사이의 반목은 프랑스 정치의 한 요소가 되었다. 베르나보는 그해 감옥에서 죽었으며 독살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1387년 비스콘티의 딸 발렌티나는 프랑스 왕의 동생인 오를레앙 공작 루이와 결혼했으며, 이는 뒤에 루이 12세와 프랑수아 1세가 밀라노 공작령 소유권을 주장하는 근거가 되었다. 비스콘티는 비스콘티 가문의 영지를 모두 손에 넣고 경쟁 도시국가들을 능숙하게 조종하며 무력으로 영토를 더욱 넓혔다. 유능한 행정가였던 그는 자신의 영지들을 하나의 국가로 통일하려 했고 정부 관리들에게 파비아대학교에서 교육과 훈련을 받도록 장려했다. 비스콘티는 통치 2년째에 밀라노 대성당을 건축하기 시작했고 1396년에는 유명한 카르투지오 수도회의 수도원인 체르토사 디 파비아를 세웠다. 또 그는 갈레아초 2세의 궁정에서 비스콘티 도서관의 장서수집을 직접 담당했던 시인 페트라르카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1387년 베로나의 델라 스칼라 왕조가 무너지자 비스콘티는 베네치아 북쪽 트레비소 변경지방 대부분에 대한 통치권을 얻었다. 또 많은 뇌물을 써서 독일 왕 벤첼에게서 1395년 밀라노 공작, 1396년 파비아 백작이라는 칭호를 받아 신성 로마 제국의 세습 제후가 되었다. 1399년에는 피사와 시에나가, 1400년에는 페루자와 다른 움브리아의 도시들이 비스콘티의 통치를 받아들였고 1402년에는 볼로냐가 합병되었다.
북부 이탈리아에서 그가 손에 넣지 못한 도시는 피렌체뿐이었다. 볼로냐를 점령한 지 3개월이 지난 뒤 피렌체를 공격하기 위해 군대를 모았으나 전염병에 걸려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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