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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라가

다른 표기 언어 Carrara family

요약 중세 이탈리아의 한 가문.
Carrara는 Carraresi라고도 씀.

처음에는 파도바 지방의 시골 마을 카라라의 봉건영주 가문이었으며 뒤에 파도바 시를 전제적으로 통치했다. 13세기에 파도바로 진출하자 처음에는 기벨린의 지도자로, 후에는 구엘프의 지도자로 활동하면서 도시정계의 반목을 이용해 새롭고 돋보이는 가문으로 지배권을 구축할 수 있었다. 이 지배권은 1318년 야코포 다 카라라가 파도바의 종신 총사령관에 선출됨으로써 기반이 잡혔으나, 베네치아의 도움을 얻어 1377년 야코포 다 카라라의 조카인 마르실리오가 총사령관에 선출되고 나서야 비로소 확고히 다져졌다. 대략 50년 동안 카라라 가문은 자체 내의 인물들을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만한 경쟁상대 없이 지배권을 행사했다.

마르실리오의 뒤를 이어 별 탈 없이 우베르티노(1338~45)가 총사령관직을 계승했으나 우베르티노의 뒤를 이은 마르실리엘로는 야코포 디 니콜로(1345~50)에 의해 축출되고 살해당했다. 야코포는 굴리엘미노에 의해 살해당했으며 총사령관직은 동생 야코피노 디 니콜로(1350~55)가 계승했으나 야코피노 역시 조카 프란체스코 일 베키오(1355~87)에 의해 권좌에서 축출되어 투옥당했다. 한편 카라라 가문의 궁정은 당대 가장 화려한 궁정의 하나였다. 특히 우베르티노는 건축과 미술의 후원자였으며 야코포 디 니콜로는 페트라르카와 절친한 사이였다.

파도바의 지배권은 벨루노와 펠트레까지 확대되고(1361), 트레비소에까지 미쳤으나(1383) 이웃한 더 큰 세력들, 특히 베네치아와 밀라노의 비스콘티 가문의 야욕으로부터 온전히 명맥을 유지하기에는 너무나 보잘것없었으며 평판도 좋지 않았다. 가문의 정책을 전환시킨 프란체스코 일 베키오는 베네치아에 대항하기 위해 비스콘티 가문을 가까이했으며 1385년 베네치아의 지원을 받던 델라 스칼라에 맞서 잔 갈레아초 비스콘티와 동맹을 맺었다. 베키오의 정책은 잘못 구상된 것이었다. 비스콘티 가문은 베로나가 점령당했는데도 파도바 정복을 위해 베네치아 및 에스테와 재빨리 동맹을 맺었다.

프란체스코는 1388년 파도바에 대한 지배권을 포기하고 항복해야 했으며 1392년 비스콘티의 포로신분으로 죽었다. 그의 아들과 손자들이 가문의 재산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종국에 가서 그 노력은 베네치아인들에 의해 좌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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