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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직물장식에 구슬을 쓰는 것.
구슬세공이라고도 함.
구슬은 낱개로 장식되거나, 실의 길이로 한꺼번에 꿰거나, 또는 짜기 전에 씨실에 구슬을 꿰어넣어 실제로 천에 짜넣는 방법 등이 있다. 유리 구슬은 고대 이집트, 그리스, 로마에서 장식으로 쓰였으며 드루이드교 사제들이 종교의식용으로 쓰기도 했다. 중세에 자수가 중요한 예술 형태였을 때 자수 명품 세공에 구슬이 쓰이기도 했다.
영국의 장엄하고 긴 성의 버틀러보든 코프(1330경, 런던 빅토리아 앤 드앨버트 박물관 소장)는 작은 진주알과 녹색 구슬로 정교하게 장식되었다. 이 시기에 만든 것 중에는 장식보다 순수하게 그림의 성격을 지닌 구슬세공품도 남아 있다. 고급 피지에 색구슬만을 사용해 만든 일련의 작은 사도들 초상은 할버슈타트 대성당(지금의 독일에 있음)에서 나온 것으로 여겨지며 같은 시대의 작은 비잔틴 모자이크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 르네상스 시대에 부유층에서는 옷에 진주와 구슬을 종종 꿰어 달아 장식했으며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시대에는 지갑 등과 같은 작은 물건에 흔히 금박실과 구슬, 작은 진주로 자유로이 장식했다.
1675년경 구슬세공은 영국에서 매우 인기가 높아 많은 물건들에 사용되었으며, 주로 장신구 상자와 작은 그림, 그리고 특수한 형태의 바구니는 전체가 구슬로 장식될 정도였다. 17세기와 그후까지 이탈리아 남부와 시칠리아에서는 금박실과 산호구슬로 된 대담한 형태의 장식품이 꽤 많이 생산된 것으로 보인다(→ 르네상스 미술).
18세기에 구슬세공은 유럽에서 인기를 잃었으나 19세기에는 인기를 되찾았다. 1800년 직후에 구슬을 꿰어 만든 면지갑이 특히 인기가 있었으며 19세기 전반에 걸쳐서는 손가락장갑과 벙어리장갑, 허리띠, 양말대님, 긴 양말, 양산과 같은 소품들의 겉면을 흔히 구슬로 장식했다. 또 수많은 여성복들은 온갖 종류의 구슬로 화려하게 장식되었다. 의상장식으로서 구슬세공은 20세기에도 되풀이되었다.
최초의 가장 단순한 미국 인디언 구슬세공품은 아마도 뼈·조가비·씨앗을 줄에 꿰어 만들었을 것이며 15~19세기에 무역품 유리구슬이 유럽 사람들에 의해서 디자인은 더욱 복잡하게 되었다. 대평원 인디언들 사이의 구슬세공 디자인은 원래 오래된 호저깃이나 순록털의 자수와 비슷한 기하학 형태의 것이었는데 가죽옷과 가방, 기타 물건들에 장식되었다. 19세기에는 꽃무늬 디자인이 인기가 있었다.
그린란드와 북아메리카의 에스키모 사람들은 넓적다리까지 오는 긴 부츠와 케이프, 튜닉(겉옷)을 구슬세공으로 장식한다. 아프리카 전역에서 구슬세공은 의식적인 머리장식물, 튜닉, 마스크, 바구니와 그밖의 다른 용기들, 인형 등의 장식에 쓰인다. 의장과 색채 배합은 민족에 따라 다르지만 생생하고 정교한 기하학 무늬가 지배적이다. 아프리카의 구슬세공은 정보를 전달하는 구실도 했는데, 예를 들어 줄루족 사이에서는 사랑의 메시지였다(→ 아프리카 예술).
구슬은 대부분의 동남아시아에서 주로 옷과 무기의 장식으로 쓰인다. 예외적으로 보르네오의 구슬세공은 대개 검은색·노란색·붉은색의 동물 형태를 본뜬 곡선장식을 쓴다. 오세아니아는 더욱 단순하며 멜라네시아를 제외하고는 나무, 조가비와 같은 천연재료를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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