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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53. 5. 6,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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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영국의 제54대 총리. 주요 업적은 최연소 노동당 당수로서, ‘신노동당’으로 일컬어지는 개혁정책을 실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83년 노동당 하원의원을 시작으로 1988년에는 노동당 예비내각 장관에 선출되었다. 1997년 마침내 20세기 최연소 총리가 되었고 이후 3기 연속 집권했다. 노동당이 가진 기존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 일환으로 노동당을 ‘신노동당’이라고 표현하며 개혁을 이끌었다. 이로 인해 영국의 정치 풍토와 경제 성장은 성공적인 변화를 맞이했다. 2007년 총리직에서 물러 났다.
영국의 제54대 총리직을 지낸 정치인. 본명은 앤소니 찰스 린턴 블레어(Anthony Charles Lynton Blair). 블레어는 1975년 옥스퍼드대학교를 졸업한 후 법정변호사가 되었다. 블레어는 노동당이 1935년 이래 최악의 패배를 맛보았던 1983년 총선 때 노동당의 안전한 선거구인 더럼 주 세지필드에서 하원의원에 당선되었다. 유럽 통합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지지자인 블레어는 1983~92년에 당수로서 노동당의 현대화를 추구했던 닐 키녹의 가장 열렬한 신봉자였다.
토니 블레어는 1988년 동료 노동당 하원의원들에 의해 예비내각 장관에 선출되었는데, 그때 그의 나이는 겨우 35세였다. 1992년 노동당이 선거에서 연속 4번째 패배하고 난 후 키녹이 사임하고 존 스미스가 당수가 되었다. 블레어는 예비내각의 내무장관으로서 범죄자에 '온건하다'는 노동당의 이미지를 불식시키기 위해 애썼다. 블레어는 '범죄에 단호하게, 범죄 원인에도 단호하게'라는 표현으로 노동당 정책을 요약하면서 점증하는 범죄 밑바탕에 깔린 사회적 원인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보수당(Conservative Party)을 공격했다. 블레어는 자신의 대중적 이미지를 보강하는 한편, 당의 현대화 추진에 박차를 가하려 했으나, 그의 뜻과 달리 당수 스미스는 노동당의 당헌과 경제 및 산업 정책의 현대화를 꺼리고 있었다.
1994년 5월 스미스가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사망한 후 7월 21일 토니 블레어는 노동당 지도자가 되었다. 블레어는 자신의 당을 '노동당'이 아니라 '신노동당'이라고 표현함으로써 일련의 개혁들을 진행했다. 1997년 5월 1일 블레어는 영국 노동당(Labour Party)을 선거사상 유례 없는 승리로 이끌었다. 이튿날 블레어는 18세기말의 소(小) 윌리엄 피트 총리 이래로 영국 최연소 총리가 되었는데, 이때 그의 나이는 겨우 43세였다.
토니 블레어는 2001, 2005년 총선에서 계속 승리하여 3기 연속 집권에 성공했다. 재임기간 동안 보수적인 영국의 정치 풍토를 상당히 개혁했으며 경제적으로도 꾸준한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군대를 파견하는 등 미국 부시 대통령의 정책을 앞장서서 지지하자 많은 비판을 받았다. 블레어는 2006년 실시된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후 2007년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2008년 종합금융회사인 JP모건 체이스의 고문이 되었고, 같은 해에 토니 블레어 신앙재단을 설립했다. 2010년에는 실리콘밸리 최대 투자 업체인 코슬라벤처스의 수석 고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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