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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68. 11. 11, 프랑스 퀴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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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40. 6. 21, 라볼 |
국적 | 프랑스 |
요약 프랑스의 화가·판화가·장식가.
피에르 보나르와 함께 앵티미슴 회화 양식을 발전시켰다.
파리의 에콜 데 보자르에서 공부하는 동안 알게 된 보나르, 폴 세뤼지에, 펠릭스 발로통과 옛 친구인 모리스 드니, 케르 자비에 루셀과 함께, 고갱이 퐁타방 시절에 그린 종합주의 작품들에서 착상을 얻어 '나비파'(Nabis)라는 단체를 결성했다.
일련의 장식 패널화인 〈파리 공원 Jardin de Paris〉은 나비파로서 원숙한 작품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이 9개의 패널화(1894, 클리블랜드 미술관, 파리 국립현대미술관, 텍사스 휴스턴 미술관, 브뤼셀 미술관 등 소장)에서 뷔야르는 엷은 조명과 중간색으로 이루어진 평면 무늬를 사용함으로써 평온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초기 작품들과는 대조적으로 여기에서는 입체감이 전혀 표현되지 않았다. 그 대신에 형태의 윤곽을 단색으로 그려서 평면적이고 태피스트리 같은 효과를 자아냈다. 나비파는 1899년에 마지막 전시회를 가졌다. 그해에 뷔야르는 인상주의 기법과 마네·드가의 미묘한 실내구성에 영향을 받은 작품들을 그렸다. 또한 당시 유럽에서 유행한 일본의 목판화에 큰 영향을 받아 뛰어난 석판화 연작 2편을 제작했다.
그는 평생을 독신으로 지냈다. 홀어머니와 함께 살았으며, 대부분의 작품이 그의 어머니가 살았던 중산계급의 가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실내 풍경들을 다루고 있다. 일찍이 1892년에 〈청소하는 여인 Woman Sweeping〉(1892경, 워싱턴 D. C. 필립스 컬렉션 소장)과 같이 일상적인 가정생활을 다룬 작은 그림들을 그려서 앵티미슴 화가로 알려졌다.
뷔야르는 장식용 작품을 만들어달라는 주문을 많이 받았다. 이런 것으로는 샹젤리제 극장의 휴게실에 있는 장식들(1913), 샤요 궁전의 벽화(1937), 제네바의 국제연합에 있는 벽화(1939) 등이 있다. 그밖에 외브르 극장과 러시아 발레단을 위한 무대설계도 맡았다. 20세기에 들어서도 앵티미슴 양식으로 여러 점의 작품을 그렸으나, 대부분의 후기 작품들에서는 초기 작품에 보였던 매력과 솔직함을 찾아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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