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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적·무신론적 불가지론의 선구자는 소피스트와 소크라테스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가장 중요하고 직접적인 원천은 데이비드 흄과 이마누엘 칸트이다.
사상가들에게 인식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라고 요구한 헉슬리가 인식의 한계 속에는 일반적인 긍정적 자연신학이나 특별한 계시가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한 것은 흄의 비판을 받아들인 셈이다. 흄의 비판은 〈인간 오성론 Enquir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초판 1748)·〈자연종교에 관한 대화 Dialogues Concerning Natural Religion〉(1779)에서 이루어졌다. 흄은 경험주의의 기본 주장에서 출발한다. 그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사실과 실재적인 존재"는 선천적으로 알 수 없으며, 특히 어떤 사물이 필연적으로 다른 사물의 원인일 수밖에 없는지 아니면 원인일 수 없는지에 대해서는 선천적으로 알 수 없다.
이렇게 생각하면 우리는 설계논증(우주의 구조·질서, 구성요소는 설계와 설계자를 함축함)을 빼놓고는 고전적인 신의 존재 증명을 모두 반박할 수 있다. 그러나 흄에 따르면, 여기서도 경험에서 출발한 논증은 지지받을 수 없다. 왜냐하면 결과와 원인으로 추정되는 전우주와 신은 본질적으로 유일하고 비교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후 흄은 〈자연종교에 관한 대화〉에서 인간이 알아낸 질서는 그것이 무엇이든 우주 자체가 원인이지 어떤 외부 원인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더 나아가 그는 기적에 호소해서는 신의 계시에 관한 주장이 참임을 확립할 수 없다고 논증했다. 이후 유럽 역사에 비추어볼 때, 흄의 태도는 칸트처럼 이 영역에 대한 지식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태도라고 볼 수 있다. 이 태도는 그저 모른다고 고백하는 자들의 태도보다 훨씬 강한 불가지론이다.
오컴(William of Ockham), 오트르쿠르의 니콜라 등 스콜라 철학자들은 긍정적 자연신학의 가능성에 대해 공격했으며, 흄은 이 전통을 이어받았다고 볼 수 있다(스콜라 철학). 한편 선천적 지식이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나 불가능하다는 흄의 주장은 오랜 전통을 지닌 부정신학과 비교할 수 있다.
부정신학에 따르면 신의 본성은 피조물의 이해를 너무 멀리 벗어나 있으므로 신은 무한하다, 비교할 수 없다는 등 대략적·간접적으로만 묘사할 수 있다. 가령 13세기 최고의 스콜라 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상도 불가지론의 계기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비유적 술어원리를 통해 어떻게 유한한 피조물이 신에 관해서 긍정적인 점을 말하고 이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려 했다.
반면 12세기 철학자 모제스 마이모니데스는 창조주에 관해서는 부정문으로만 말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종교적 불가지론을 말하는 것이 자기모순은 아니지만, 종교적 관심사와 불가지론적 관심사를 조화시키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가장 쉬운 방법은 종교에는 형이상학적 내용이 전혀 없어도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쉬운 방법은 어떤 대상을 숭배하는 것과 그 대상이 지닌 속성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은 서로 조화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태도의 결함은 스펜서가 지적했듯이, 있다는 점 밖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어떤 존재가 있다고 긍정하는 것은 그 어떤 존재도 긍정하지 않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데 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신의 본질 또는 내적 본성과 신과 창조의 외적 관계를 구별하는 것이다. 이 경우 신의 내적 본성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보잘 것 없거나 아예 없을 수도 있지만 신과 창조의 외적 관계에 대해서는 우리가 필요한 만큼 알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이상의 것에 대해서는 겸허하게 불가지론자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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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불가지론의 역사적 배경 – 다음백과, 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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