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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성회

다른 표기 언어 北星會

요약 1923년 1월 일본 도쿄[東京]에서 김약수(金若水)·김종범(金鍾範)·변희용 등이 사회주의 사상을 전파하기 위해 조직한 사상단체.

무정부주의단체인 흑도회(黑濤會)에서 분리하여 조직되었다. 60여 명이 참가했는데, 한국 무산계급과 일본 무산계급의 단결과 재일조선인 노동자의 단일조합 창설을 목표로 내걸었다. 1923년 3월부터 기관지로 〈척후대 斥候隊〉와 〈전진 前進〉을 발행했으며, 월례집회 때마다 일본의 유명한 사회주의자들인 사카이[堺利彦], 야마가와[山川均], 사노 마나부[佐野學] 등을 초청했다. 7월말 김약수·김종범·정우영(鄭又影) 등은 일본사회주의자들인 효민회(曉民會)의 다카쓰[高津正道], 자유법조단(自由法曹團)의 후세[布施辰治] 등과 함께 국내에 신사상을 전파하고 활동거점을 마련하기 위해 일시 귀국했다.

그들은 순회강연단을 조직해 7월 30일 종로 청년회관에서의 강연을 시작으로 1주일에 걸쳐 평양·광주·대구·마산·진주 등지에서 순회강연회를 개최했다. 9월 관동대지진 때 조선인 학살사건이 발생하자 동경조선노동동맹회, 일본노동총동맹 등과 함께 박해받는 동포의 파악과 위문에 노력했다. 그리고 11월에는 재일조선인 노동단체들과 협의해 조선인 학살사건에 대한 성명서를 발표했다. 한편 10월 23일에는 서울에서 김약수·김재명(金在明) 등 160여 명이 모여 건설사(建設社)를 조직했다.

1924년 11월 15일에는 국내 북성회 계열의 국내 단체들을 총괄하기 위해 건설사를 발전적으로 해소하고, 서울청년회에 대항할 북성회의 국내본부로 북풍회를 결성했다. 이를 전후해서 주요회원들이 대거 귀국해 국내로 활동의 장을 옮겼다. 11월 27일에 열린 북풍회의 제1회 집행위원회에서는 서무·조직·조사·교양·편집·지방 등 6개 부서와 1개의 특별연구소를 둘 것을 결의했다. 이때 채택된 선언과 강령에서는 과학사상의 보급과 대중운동에 대한 계급적 훈련, 사회운동과 민족운동의 시간적 협동 등을 주장했다. 한편 일본에 남아 있던 북성회원들은 1925년 1월 3일 북성회를 해산하고 일월회를 조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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