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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군수리사지

다른 표기 언어 扶餘軍守里寺址

요약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군수리에 있는 백제시대의 절터.

사적 제44호. 1935~36년의 2차례 발굴을 통해 중문(中門)·탑·금당·강당이 남북으로 배열된 일탑일금당식(一塔一金堂式)의 가람임이 밝혀졌다. 탑지(塔址)에는 윗면에 목탄구(木炭區)가 있고, 180㎝ 아래에서 심초석(心礎石)이 발견되어 중심에 굴립주(掘立柱)를 세운 목탑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탑지의 기단 가운데 지표 밑 약 120㎝에서 부여 군수리 금동보살입상(보물 제330호)·토기·철기가, 150㎝에서는 부여 군수리 석조여래좌상(보물 제329호)·금가락지·소옥(小玉) 등이 발견되었고, 금당지와 탑지에서 출토된 옥기류가 1,150여 점에 달한다.

백제시대 금동보살입상. 보물 제330호. 높이 11.2㎝. 국립부여박물관 소장. 방형에 가까운 둥근 얼굴에 잔잔한 미소를 띠고 있으며 머리에는 삼화관(三花冠)을 쓰고 있다.

부여 군수리 금동보살입상

부여 군수리 금동보살입상

ⓒ 미상/wikipedia | Public Domain

백제시대 금동보살입상. 보물 제330호. 높이 11.2㎝. 국립부여박물관 소장. 방형에 가까운 둥근 얼굴에 잔잔한 미소를 띠고 있으며 머리에는 삼화관(三花冠)을 쓰고 있다.

관 양쪽에 있는 3갈래의 끈장식은 어깨 위로 늘어져 있다. 끝이 뾰족한 굵은 목걸이를 하고 있고, 가슴에는 내의가 2줄의 사선으로 표현되어 있다. 천의(天衣)는 두 어깨 위에 둥근 장식으로 묶여서 몸의 앞면에서 X자형으로 교차하며 늘어져 있고, 몸 좌우로는 몇 개의 뾰족한 층단을 이루면서 뻗쳐 있다. 천의와 군의에 보이는 U자형의 반복적인 옷주름은 자연스러운 깊은 음각선으로 표현되어 있다. 오른손은 들어서 시무외인(施無畏印)을 하고 있는데 끝의 두 손가락은 구부리고 있으며, 왼손에는 심엽형(心葉形)의 지물을 들고 있다. 대좌는 2중의 단판연화좌이다. 조각양식상 중국의 동위(東魏) 보살상과의 연관을 보여주며 제작시기는 6세기 후반 정도로 추정된다. 전체적인 조형이 정제되어 있는 백제 초기의 대표적인 보살상이다.

부여 군수리 석조여래좌상

부여 군수리 석조여래좌상

ⓒ Tortfeasor/wikipedia | Public Domain

선정인(禪定印)의 불좌상. 보물 제329호. 높이 13.5㎝. 국립부여박물관 소장. 소발(素髮)의 머리에는 작은 육계가 있고, 약간 숙이고 있는 얼굴은 통통하며 잔잔한 미소를 띠고 있다. 법의는 통견(通肩)으로 가슴이 깊게 벌어져 내의가 보이며 대의의 끝자락은 어깨 뒤로 넘겨져 있다. 네모난 대좌에는 법의 자락이 늘어져 상현좌(裳懸座)를 이루었는데, 몸의 가운데를 흐르는 둥근 옷주름은 대좌의 중앙으로 연결되고 그 좌우로 2단의 옷주름이 대칭을 이루고 있다.

조각수법이 부드럽고 정적인 조형감을 간직한 전형적인 백제불상으로 제작시기는 6세기 후반으로 추정된다.

부여 군수리 금동보살입상

보물 제330호. 높이 11.2㎝. 국립부여박물관 소장. 방형에 가까운 둥근 얼굴에 잔잔한 미소를 띠고 있으며 머리에는 삼화관을 쓰고 있다. 관 양쪽에 있는 3갈래의 끈장식은 어깨 위로 늘어져 있다. 끝이 뾰족한 굵은 목걸이를 하고 있고, 가슴에는 내의가 2줄의 사선으로 표현되어 있다.

백제시대 불상

부여 군수리 석조여래좌상, 보물 제329호(하좌)

ⓒ 연합뉴스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천의는 두 어깨 위에 둥근 장식으로 묶여서 몸의 앞면에서 X자형으로 교차하며 늘어져 있고, 몸 좌우로는 몇 개의 뾰족한 층단을 이루면서 뻗쳐 있다. 천의와 군의에 보이는 U자형의 반복적인 옷주름은 자연스러운 깊은 음각선으로 표현되어 있다. 오른손은 들어서 시무외인을 하고 있는데 끝의 두 손가락은 구부리고 있으며, 왼손에는 심엽형의 지물을 들고 있다. 대좌는 2중의 단판연화좌이다. 조각양식상 중국의 동위 보살상과의 연관을 보여주며 제작시기는 6세기 후반 정도로 추정된다. 전체적인 조형이 정제되어 있는 백제 초기의 대표적인 보살상이다.

부여 군수리 석조여래좌상

보물 제329호. 높이 13.5㎝. 국립부여박물관 소장. 소발의 머리에는 작은 육계가 있고, 약간 숙이고 있는 얼굴은 통통하며 잔잔한 미소를 띠고 있다. 법의는 통견으로 가슴이 깊게 벌어져 내의가 보이며 대의의 끝자락은 어깨 뒤로 넘겨져 있다. 네모난 대좌에는 법의 자락이 늘어져 상현좌를 이루었는데, 몸의 가운데를 흐르는 둥근 옷주름은 대좌의 중앙으로 연결되고 그 좌우로 2단의 옷주름이 대칭을 이루고 있다. 조각수법이 부드럽고 정적인 조형감을 간직한 전형적인 백제불상으로 제작시기는 6세기 후반으로 추정된다.

부여 군수리 석조여래좌상(보물 제329호)

충청남도 부여 군수리 절터에서 출토된 석조여래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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