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요약 1545년(명종 즉위) 8월에 일어난 을사사화(乙巳士禍)를 주도한 인물들을 공신으로 책봉한 것.
인종이 재위 8개월 만에 사망하고 이복동생인 경원대군(慶原大君)이 명종으로 즉위하자, 모후인 문정왕후(文定王后)의 밀지를 받은 윤원형(尹元衡)이 이기(李芑)·정순붕(鄭順朋)·임백령(林百齡)·허자(許磁) 등과 함께 명종의 보위를 굳힌다는 명분 아래 윤임(尹任)·유관(柳灌)·유인숙(柳仁淑) 등을 탄핵·사사하고 권벌(權橃)을 체직시켰다. 윤원형 등 을사사화를 주도한 계층은 성종대 좌리공신(佐理功臣)의 예에 따라 공신책록을 단행해 보익공신으로 정해졌다. 1등은 정순붕·이기·임백령·허자·등 4명, 2등은 홍언필(洪彦弼)·윤인경(尹仁鏡)등 9명, 3등은 송기수(宋麒壽)등 16명을 책록했다.
이어 윤원형·한경록(韓景祿)등 5명이 3등으로 추가되었으며, 이원후(李元祐)는 4등에서 원종공신으로 내려가고, 4등을 3등으로 승격시켰다.
그뒤 공신호도 위사공신으로 바뀌었고, 동신등급도 재조정되었다. 1등은 이기·정순붕·임백령·허자, 2등은 홍언필(洪彦弼)·윤인경(尹仁鏡)·윤원형·민제인(閔齊仁)·최보한(崔輔漢)·김광준(金光準)·임구령·한경록, 3등은 이언적(李彦迪)·정옥형(丁玉亨)·신광한(申光漢)·윤개(尹漑)·최연(崔演) 등으로 정해졌다. 1548년 8월 황헌(黃憲)·심연원(沈連源)·김명윤(金明胤)·안세우(安世遇)가 추가되어, 총32명으로 확정되었다.
원종공신에는 1,400여 명이 책록되었다. 1등공신에게는 반당(伴倘:종친·관리를 우대하기 위해 주는 병졸) 10명, 노비 12구(口), 구사(丘史:종친·관리에게 준 하인) 7명, 전(田) 150결, 가사 1좌(坐), 2등공신에게는 반당 8명, 노비 10구, 구사 5명, 전 100결, 3등공신에는 반당 6명, 노비 8구, 구사 3명, 전 80결을 각각 주었다. 이외에도 사화의 피해자로부터 적몰한 전답의 분급이 지체되자, 1등공신에게는 은(銀) 50냥, 단자(段子) 1필, 2등공신에게는 은 25냥, 단자 1필, 3등공신에게 은 15냥, 단자 1필을 미리 주었다. 이기·윤원형을 중심으로 하는 이들 보익공신세력은 1547년 9월 양재역벽서사건, 1548년 안명세(安名世)의 옥(獄), 1549년 이홍윤(李洪胤)의 옥 등 일련의 옥사를 통해 사림파에 대한 타격을 가하고 계속 정계를 주도했다. 그러나 훈척(勳戚) 세력의 몰락과 사림세력의 정계주도라는 지배세력의 교체가 이루어짐에 따라 1570년(선조 3)에 이기·정순붕·임백령 등의 관직이 삭탈되었으며, 1577년 위훈(僞勳)으로 간주되어 완전히 삭훈(削勳)되었다.→ 을사사화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조선과 같은 주제의 항목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