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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09. 6. 30, 도미니카 공화국 라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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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도미니카 공화국 |
요약 도미니카 공화국의 작가·학자·정치가.
1962년 대통령에 취임했으나 1년도 채 못 되어 군부에 의해 축출되었다.
일찍이 라파엘 트루히요의 독재정치에 항거하여 추방형에 처해졌으며 1939년 좌파 '도미니카 혁명당'(Partido Revolucionario Dominicano/PRD)을 창설했다. PRD는 도미니카 최초의 정당이며 트루히요 사망 이후 국가권력을 이수할 건설적 계획을 갖고 있던 유일한 정당이었다. 탁월하고 카리스마적인 웅변술을 가진 보슈는 이제까지 소외되어왔던 농민층에 직접 호소했을 뿐 아니라 빈민층과 중산층 지식인 계층의 지지를 얻기 위해 계층을 망라해 유세 연설을 함으로써 1962년 12월 20일의 선거전에서 압승을 거두었다.
1963년 2월 27일 대통령으로 취임한 보슈는 어려운 문제들에 봉착하게 되었다.
당시 미국 정부는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로부터 상당한 충격을 받고 있었으며 카리브 해 국가들의 전반적인 좌익성향에 대하여 우려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 위기의식은 새로운 도미니카 공화국 정부에 반감을 갖고 있던 미국 대사의 정세보고서에 의해서도 가중되었다. 4월 29일 대통령이 공포한 자유민주주의 헌법은 국내 4대 기간세력의 입지를 가차없이 뒤흔들어놓았다.
지주들은 대토지소유금지 조항으로 경악을 금치 못했고 교회는 헌법의 세속적인 성향에 분노했으며, 경영자들은 헌법이 노동계층 편향적이라고 생각했으며 특히 군부의 지도자들은 권위의 실추를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1963년 9월 25일 군부는 대통령을 국외로 추방했다.
2년간에 걸친 푸에르토리코 망명생활(1963. 9. 28~1965. 9) 끝에 후안 보슈는 입국을 허락받았으며 선거에의 참여도 승인받았다. 그러나 신변의 안전을 두려워한 그는 대중들 앞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등 적극적인 선거 캠페인을 벌이지 못했으며, 미국의 후원을 받고 있는 보수주의 정치가 호아킨 발라게르에게 패배하고 말았다. 보슈와 그의 당은 1970년 총선에 참여할 수 없었으며 1973년이 되자 PRD 지도자들은 직접 정치과정에 뛰어들기를 갈망했다.
이에 따라 보슈는 PRD를 포기하고 스스로 제3당인 '도미니카 해방당'(Partido de la Liberación Dominicana/PLD)을 창설했다. 차기 대통령선거에서 또다시 패배한 후안 보슈는 대대적인 타락선거를 항의하고 나섰다.
재임기간이 너무 짧은 탓에 보슈의 직무수행능력을 평가할 수는 없지만 그가 도미니카 정치발전에 기여한 공로는 상당히 크다고 할 수 있다. 후안 보슈는 31년 동안의 독재정치 이후에 진정한 의미의 정당을 창설, 도미니카의 야당정치에 본보기를 제공했으며 합헌적인 민주선거의 전통이 뿌리 내리게 만들었다(→ 도미니카 공화국).
그는 또한 역사가이자 정치평론가로서 명성을 얻어 대체로 도미니카 및 카리브 해 연안국가들의 정치에 관한 저작들을 발표했다. 소설과 함께 전기물로 1960년 〈시몬 볼리바르 Simón Bolívar〉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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