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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1901년 신생 오스트레일리아 연방이 발표한 아시아 인종에 대한 이민금지정책.
이 정책은 오스트레일리아의 여러 식민지들이 오랫동안 품어온 감정을 집약시켜 보여준 것이며 20세기 중반까지 기본적인 연방정책으로 지켜져왔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식민지 각국은 1860년대 초기에 이민금지입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당초 중국인의 이민을 막을 목적으로 특별히 입안되었으나 뒤에는 동인도인들과 카나카스인들(남태평양섬 주민들)은 물론, 특별히 1894~95년의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중국을 이긴 뒤 일본인들의 이민이 급증하자 일반 대중의 불만이 고조되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백인주의 운동을 떠받쳐주는 주요한 요소들은 다음과 같다(→ 인종주의). 일본의 군사침략에 대한 두려움, 아시아 노동자들이 비록 임금은 싸지만 능률적으로 일을 한 결과 누리게 된 생활 수준의 향상, 그리고 전통적인 백인 인종주의 등이다. 1901년에 연방에서 이민제한법을 발족시켜, 유럽어로 입국시험을 치루게 한 결과, 비유럽인의 이민을 효과적으로 막았다. 1901년의 추가 입법으로 연방 내에 거주하고 있는 카나카스인들을 1906년에 추방하게 되었다.
오스트레일리아 백인주의는 언제나 열렬한 대중의 지지를 받았지만, 1919년의 파리 강화회의에서 더욱 고무되었다. 이 회담에서 오스트레일리아의 대표들은 일본에서 후원했던 국제연맹 약관의 인종평등에 관한 수정안을 부결시키는 데 성공했다. 1950년경부터 자유당이 집권하자 이 정책은 엄격하게 지켜지지 않았으며, 1972~75년의 노동당 정권하에서 더욱 현저하게 둔화되었다(→ 오스트레일리아 이민제한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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