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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20. 11. 23, 평남 강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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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2020. 7. 10, 서울 |
국적 | 한국 |
요약 군인·정치인·기업인. 평남 강서에서 태어나 만주 군관학교를 졸업하고 만주국 헌병 중위로 해방을 맞았다. 해방 후 귀국, 군사영어학교 1기생으로 임관하여 국방경비대에서 연대장, 사단장을 맡았다. 휴전회담에 한국측 대표로 참여했으며, 육군참모총장 및 합동참모의장을 역임하고 대장으로 예편한 뒤로는 외교관으로 활동했다. 이후 충주비료 사장에 취임한 이후 재계에서 활동했다. 2020년 7월 10일 지병으로 타계했다.
군인·정치인·기업인. 1920년 평안남도 강서에서 태어나 1941년 만주군관학교를 졸업하고 만주군 소위로 임관하여, 1943년부터 간도특설대에서 근무하면서 반만항일항쟁에 나섰던 동북항일연군과 팔로군 토벌작전을 수행했다. 1945년 8월 일제가 항복을 선언했을 때는 만주군 헌병 중위였다. 무장해제 후 귀국하여 고당 조만식의 비서로 잠시 일하다가 월남하여 1945년 12월 군사영어학교 1기생으로 입학, 이듬해 2월 임관했다.
임관 후 제5연대 중대장, 대대장, 연대장을 거쳐 1947년에는 제3여단 참모장을 지냈고, 1948년 대령으로 승진한 뒤 1949년 제5사단장을 지냈다. 1950년 제1군단장을 지냈고, 휴전회담시 한국측 대표로 나가 휴전문서에 조인하기도 했다. 1952년 제2군단장을 거쳐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이 되었다. 1954년 군사령관, 1957년 다시 육군참모총장이 되었다. 1959년 합동참모의장을 지낸 후 1960년 대장으로 예편했다.
예편과 동시에 주중국 대사로 발령받았다. 1961년 주프랑스 대사 겸 네덜란드·벨기에 대사를 지냈고, 1962년 가봉·토고·세네갈·카메룬·차드·모리타니 주재대사를 겸임했다. 1965년 주캐나다 대사를 마지막으로 외교관직을 떠났으며, 1969~71년 교통부장관에 취임했다. 1971년 충주비료 사장에 취임하면서 재계에 진출했고, 곧 전국경제인연합회 이사, 호남비료 사장을 겸임하다가 한국종합화학의 사장이 되었다.
1979년 정계에서 은퇴했으며 1980년에는 한국종합화학의 사장직에서도 물러났다. 이후 한국후찌쯔 고문, 한국화학연구소 이사장, 국제상공회의소 국제위원장을 역임하고 강연 활동을 다녔다. 1999~2001년에는 노근리사건 대책단 자문위원회 위원장으로 위촉되었고, 2008년에는 대한민국 건국 6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고문으로 위촉되었다. 2013년 주한미군으로부터 미8군 명예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2020년 7월 10일 지병으로 타계했으며,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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