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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문학의 소재는 언어이며 그 언어를 조합해 조직화하는 것이 문학의 본질이다. 문학의 발생은 문자의 발명보다 훨씬 전의 일로 풍요를 기원하는 등의 주문·기도에서 기원한다. 문자가 생겨난 뒤에도 책에 의해 문학이 널리 유포되게 된 것은 종이와 인쇄술이 발명되고 난 후부터이다.
문학은 고대부터 여러 장르로 나누어졌다. 호메로스에 의해 대표되는 서사시, 사포에 의해 대표되는 서정시, 3대 비극시인(아이스킬로스·소포클레스·에우리피데스)에 의한 비극, 아리스토파네스에 의한 희극이 BC 5세기 무렵 확립되었다. 여기에 철학·역사 등의 산문이 생겨났으며 로맨스·동물담시 등의 서민적인 이야기 문학이 중세에 번성했다. 그뒤 18세기에 전통적인 희극·비극 대신 드라마가 성립되었고 모든 장르를 포함할 수 있는 소설이 탄생했다.
지금은 주로 문자로 씌어져 책의 형태로 된 것을 말하지만, 문자를 쓰지 않고 말로 전승되는 구비문학(口碑文學)도 이에 해당된다.
오늘날 우리들이 쓰고 있는 '문학'이라는 말은 〈논어〉 등에 나오는 '문헌에 대한 학문'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영어의 'literature'에 해당하는 번역어이다. 'literature'라는 말은 '기록'을 의미하는 라틴어 'litteratura'에서 나왔다. 이 말의 원근이 되는 'littera'는 문자라는 뜻으로, 복수형 'litterae'는 알파벳이란 뜻이다. 기록이란 조금이라도 없어질 수 없는 점토·나무·돌·종이 위에 새겨넣거나 써넣어 조직화된 언어로 재현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씌어진 모든 것은 문학이라고 정의할 수 있으며 서양에서는 철학·역사·과학 저서까지도 문학사에서 거론하기도 한다. 그러나 문학이라는 말은 더욱 한정되어 시·희곡·소설 등의 순문학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문학도 예술인 이상 어떤 형태를 취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회화가 타블로(tableau), 조각이 입상, 음악이 소리의 형태를 취한다고 하면, 현재 우리들이 말하는 '문학'은 책 또는 인쇄물의 형태를 취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소재면에서는 화가의 사상이나 감정을 전달하는 모양·색깔, 음악가가 전달하려는 음 등은 직접 상대방의 눈이나 귀에 호소할 수 있는 구체적인 소재인 데 반해 작가의 경우는 일련의 추상적인 표시인 문자가 소재가 된다.
화폭 위에 그려진 푸른 하늘은 구체적인 '사물'이지만 '하늘'이라는 말은 실제 하늘의 추상적인 표시에 불과하다. 따라서 사르트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문학이 다른 예술과 구분되는 점은 단지 형식뿐만이 아니라 소재도 그러하다. 색이나 음을 써서 표현하는 것과 언어를 사용해 표현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일이다.
음표·색·모양은 표시가 아니며 외부의 무엇과 대응하고 있지도 않다." 즉 이와 같은 언어를 소재로 하고 있는 것이 문학과 그외의 예술을 구별하는 가장 큰 차이점이라 할 수 있다.
언어라는 공통된 소재를 써서 전달하며 양쪽 모두 책 또는 인쇄물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학은 과학에 가깝다. 그러나 하나의 실험 결과 발견된 과학적 진리는 같은 절차를 밟으면 누구든지 같은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지만 문학적 진실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것으로서 똑같은 문학적 실험을 되풀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문학적 진실은 1회적이므로 문학에서는 작가와 작품을 떼어낼 수 없다.
문학의 소재는 언어이며 그 언어를 조합해 조직화하는 것이 문학의 본질을 결정짓는다. 즉 우리들이 일상생활에서 의지나 감정을 전달하는 수단인 언어가 그대로 문학에 이용되는 것이다. 회화의 색·모양, 또는 음악의 음표와 달리 언어는 생활에 밀착해 있으므로 사회에 있어 불가결한 요소이다.
그러므로 문학은 조형미술이나 음악이 표현할 수 있는 범위를 훨씬 넘어선 광범함을 지닐 수 있는 것이다. 감상의 표현만이 아니라 지식을 가르치고 사상을 전달하며 교훈을 주는 것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 일상어가 그대로 문학의 언어가 되는 것은 아니며, 그렇다고 문학을 위한 언어라는 것이 따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누구나가 사용하는 일상어를 정교하게 다듬고 독자적인 생명을 불어넣어 새롭게 조직할 때 비로소 문학 언어가 되는 것이다. 훌륭한 작가는 언어라는 소재를 마음대로 조작해 자기의 사상이나 감정을 완전하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창작 활동에 있어서는 이것이 뜻대로 되지 않으므로 작가에게는 항상 완전하게 표현할 수 없었던 것이 머리 속에 남아 있게 되며 그 거리를 가능한 한 좁히는 데는 작가의 노력이 필요하다. 문학적 표현의 문제를 정의한 발레리의 다음 말은 아주 함축적이다. "과일 속의 자양분처럼 사상은 시구(詩句) 속에 감추어져 있어야 한다. 과일은 영양물이지만 단맛밖에 없다. 사람은 즐거움만을 생각하지만 양분을 취한다.
황홀하게 하는 맛 속에 우리가 잘 느낄 수 없는 영양이 듬뿍 감추어져 있다."
그렇지만 글자로 씌어진 모든 것이 문학이라고 할 수는 없다. 사람들은 문학과 문학이 아닌 것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우리들이 문학과 문학이 아닌 것을 구별하는 능력은 사실상 어렸을 때 어머니에게서 들은 동화나, 학교에 다니면서부터 국어 교과서에 게재된 문학작품을 보고 키워지는 일이 많다.
우리들은 그것이 훌륭한 문학작품인지 알지 못한 채 동서고금의 우수한 작가의 작품을 읽어왔다. 물론 뛰어난 작가의 훌륭한 작품이 아닌 경우도 있다. 그러나 어렸을 때부터 훌륭한 미술품을 접해온 사람에게 저절로 훌륭한 안목이 생기는 것처럼, 훌륭한 문학작품과 접하고 있는 사이에 같은 인쇄물이라 해도 늘상 접하는 신문·잡지의 기사와는 전혀 다른, 완전히 이질적인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는 "시는 운율을 가진 언어가 있는 곳에 존재한다. 다만 광고문이나 신문의 3면 기사를 제외하고"라고 말한 말라르메의 말과 일맥상통한다.
이처럼 그 장소에서 한번만 읽고 버릴 수 없는 것이 문학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과거로부터 계속해서 존재하는 것이며 과거에 속하면서도 항상 현재에 있어 끊임없이 일깨우는 무언가를 갖고 있는 것이다.
또한 문학의 본질상 실용적 가치는 없지만, 그대신 우리의 상상력을 키워주고 풍부하게 해주며 도피욕구를 만족시켜주고 이해관계와는 거리가 먼 교양을 완성시켜 주는 것이다.
문학의 기원은 다음과 같다. 조형미술의 출현과 책의 출현과의 사이에는 수만 년의 차이가 있다. 라스코·알타미라 동굴 속에 그려진 선사시대의 그림과 나일·유프라테스 강 근처에서 발견된 그림문자 사이에는 인류의 오랜 진보 과정이 있었다. 그러나 문학의 발생은 문자의 발명보다 훨씬 전의 일로 풍렵(豊獵)을 기원해 사냥감인 동물을 그린 동물벽화가 회화의 기원이 된 것처럼 문학 역시 풍요를 기원하고 자연에의 외경심을 말한 주문·기도에서 기원한다.
손·발장단을 치면서 주문을 외우는 데서 음악이나 춤과 함께 시가 발생했다고 할 수 있다. 문자가 생겨난 뒤에도 문학에서 그것을 사용한 것은 훨씬 뒤의 일이다. 우선 문자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으며 비싼 양피지에 필사된 사본은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책에 의해 문학이 널리 유포되게 된 것은 종이와 인쇄술이 발명되고 난 다음부터이다.
그전까지는 여러 세대 동안 구비문학의 시대가 계속되었다. 바빌로니아의 〈길가메시 Gilgamesh〉에서 호메로스의 고대 서사시 〈일리아스 Iliad〉·〈오디세이아 Odyssey〉, 중세의 〈니벨룽겐의 노래 Nibelungenlied〉·〈롤랑의 노래 Chanson de Roland〉 등은 구전되어오다 기록되어 현대까지 이른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 아무런 단편(斷片)조차 남아 있지 않다 해도 선사시대에도 문학이 존재했다고 상상할 수 있는 것이다.
앞서 말한 〈길가메시〉나 BC 1200년경의 〈리그베다 Rigveda〉, 〈구약성서〉 〈창세기〉 속에 삽입된 짧은 시 등은 온전히 남아 있는 것의 오래된 예이지만, 수메르인이 만든 설형문자는 BC 3세기부터 고대 오리엔트의 여러 나라에서 사용되었다. 남아 있는 고대 문학작품에서 추정할 수 있는 것은 운문과 산문 사용상의 구별이다.
인간을 지배하며 공포를 주는 초자연적인 힘을 경외·진정시키는 것은 운율이 있는 운문으로서 반복구를 비롯한 여러 시적 기법을 썼다. 또한 문자를 사용하지 않고 말을 기억하는 데에는 규칙성이 있는 말(운문의 최대 요소인 동일한 리듬의 반복인 운율)이나 두운(頭韻)·각운 등의 형식이 중요한 도움이 된다. 이와 달리 사람들간의 모든 관계, 예를 들면 계약 등을 기록한 것은 산문이었다.
그리스에서도 철학·역사·지지(地誌) 등은 산문으로 씌어졌으며 극을 비롯한 순문학적인 것은 모두 운문이었다. 이와 같은 전통이 계속 후대까지 이어져왔고 산문이 문학에 널리 쓰이게 된 것은 18세기 이후의 일이다.
문학이 사회를 묘사하고 인생을 그리고 있는 이상, 그것이 사회적 산물인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문학은 사회로부터 영향을 받으며 또한 사회에 영향을 준다. 작가 자신이 사회의 일원이며 독자도 또한 같은 사회에 속해 있다. 작가는 그가 생활하는 시대와 사회를 표현할 것을 암암리에 독자들에게 요구받고 있으며 그 요구에 응하는 것이 작가의 사명으로 되어 있다.
같은 시대와 사회의 공기를 마시면서 성실하게 살아가지 않는 작가에게 독자는 공감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학작품은 과거 어느 시대의 사회의 현실 모습을 나타내는 역사적 문헌이 될 수 있다. 발자크의 〈인간 희극 Comedie Humaine〉의 각 장에는 왕정복고시대의 파리와 프랑스의 생활상이 그려져 있다. 또한 프루스트는 사회구조 속에서 붕괴해가는 프랑스 귀족을 자세히 묘사했다. 단지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의 사회만이 아니라 특정한 시대의 사회 모습을 그리는 것은 작가의 커다란 야심이다.
또한 사르트르처럼 보다 적극적으로 작품을 통해 대중에게 호소하면서 사회 혁명에 참가하도록 노력하는 작가도 있다.
문학은 고대로부터 여러 장르로 나누어졌다. 호메로스에 의해 대표되는 서사시, 사포에 의해 대표되는 서정시, 3대 비극시인(아이스킬로스·소포클레스·에우리피데스)에 의한 비극, 아리스토파네스에 의한 희극이 BC 5세기 무렵에 확립되어 있었다. 여기에 철학·윤리·역사 등의 산문이 생겨났으며 로맨스·파블리오[寓話譚]·동물담시 등의 서민적인 이야기 문학이 중세에 번성했다.
그뒤 18세기에 이르러 전통적인 희극·비극 대신 드라마가 성립되었으며 또한 모든 장르를 그 속에 포함할 수 있는 소설이 탄생했다. 소설은 19세기에 가장 융성했는데 이는 개인주의 및 근대적인 저널리즘의 발달과 더불어 서사시나 극에 대해 비로소 사적인 성격을 갖는 장르가 주목받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감상자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일반 청중에서 개인적인 독자로의 변화를 의미한다.
장르의 구별은 서양에서는 프랑스 문학이 가장 엄격했다.
이러한 점은 셰익스피어와 라신의 극을 비교해보면 알 수 있지만 프랑스에서도 19세기말에는 자유시 운동이 일어나 산문시라고 하는 새로운 장르가 생겨났다. 따라서 장르의 구별이 점차 애매해져 총괄적인 표현 속에 많은 장르를 포함하려고 하는 경향이 전세계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한편 제1차 세계대전 후부터 문학은 그것을 내부에서부터 붕괴시키려는 초현실주의 운동의 위협을 받게 되었는데, 이는 문학자에 의한 문학의 자기부정이라고 할 운동으로 제2차 세계대전 후에 나타난 반소설(antiroman)의 시도도 그 하나로 볼 수 있다.
그와 동시에 문학은 외부로부터 위협받게 되었다. 영화·레코드·라디오·텔레비전 등 문자를 쓰지 않고 음과 이미지만을 전달수단으로 하는 새로운 표현방법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러한 매체들은 날마다 그 범위를 확대하며 문학의 아성에 도전하고 있다. 문학의 가장 유력한 형태였던 책의 영토는 점차 침략당하고 있다.
설마 인류가 책을 내버리는 시대가 오지는 않겠지만 우리는 이 새로운 표현방법을 도입해 훌륭하게 이용하는 것을 생각해야 할 단계에 이른 것 같다. "문학은 오락·교육·선교뿐만 아니라 선전·자기단련·타인자극 등의 역할을 한다"는 발레리의 말처럼 문학의 이러한 기능은 변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 방법에 대해 변혁을 일으킬 만한 시기가 가까이 온 것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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