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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경상북도 서북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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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 68,529 (2024) |
면적 | 911.17㎢ |
행정구역 | 2개읍 7개면 5개동 |
사이트 | http://www.gbmg.go.kr/ |
요약 경북 서북부에 있는 시. 1995년 문경군과 점촌시가 통합되어 문경시가 되었다. 문경읍 조령산 부근을 문경새재라고 부르며 지역이 알려졌다. 문경새재는서울과 영남지방을 이어주는 험한 고개인데 '새도 날아서 넘어가기 힘들다'는 뜻을 갖고있다. 가은읍에 있는 석탄박물관에서는 과거 석탄산업으로 발전해 온 문경시의 옛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면적 911.17㎢, 인구 68,529(2024).
대한민국 경상북도 서북부에 있는 시. 예로부터 서울과 영남을 이어주던 고갯길인 문경새재로 널리 알려진 지역이다. 문경새재는 '새재' 혹은 '조령(鳥嶺)'이라 하는데 높이 1,017m인 조령산을 '새도 날아서 넘어가기 힘들다'는 뜻에서 유래했다. 석탄산업의 발달과 함께 성장한 도시이나 1987년부터 시작된 정부의 석탄산업 정리사업으로 1989년부터 1996년까지 전국 334개의 탄광이 모두 폐광되었고, 문경시에는 1999년 개관한 가은읍의 석탄박물관만이 남아있다.
행정구역은 문경읍·가은읍·영순면·산양면·호계면·산북면·동로면·마성면·농암면·점촌1동·점촌2동·점촌3동·점촌4동·점촌5동 등 2개읍 7개면 5개동이 있다(행정동 기준, 법정동 기준 11개동). 시청 소재지는 경상북도 문경시 당교로 225이다. 면적 911.17㎢, 인구 68,529(2024).
연혁
일찍부터 인간의 거주가 있었음을 청동기시대의 유물·유적의 발견으로 알 수 있다. 삼한시대에는 진한의 근기국(勤耆國, 지금의 산양면 일대)이 이 지역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통일신라 757년(경덕왕 16)에 관산현(冠山縣)으로 개칭했으며, 고려초인 940년(태조 23)에 문희군(聞喜郡)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조선 태종 때의 군현제 개편으로 문경현이 되었다. 임진왜란으로 문경새재의 중요성이 재확인되어 1708년 조령산성이 축조되었다. 지방제도 개정으로 1896년에 경상북도 문경군이 되었다. 1906년 월경지 정리에 의해 상주의 두입지 5개면과 예천의 두입지인 동노소면이 편입되어 면적이 크게 넓어졌다.
1914년의 군면 폐합으로 동노소면·산북면·호서남면 등을 제외한 다른 면들은 통폐합되었다. 1956년 호서남면이 점촌읍으로, 1973년 문경면과 가은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86년 점촌읍이 시로 승격·분리되었다.
1995년 지방자치선거를 앞두고 실시된 전국행정구역개편으로 문경군과 점촌시가 통합되어 문경시라는 새로운 형태의 도농통합시를 이루었다(→ 점촌시). 1996년 거산출장소와 수평출장소가 폐지되었고, 1999년 신기동·대성동·공평동을 통합하여 신평동이 신설되었다. 2004년 점촌동·중앙동·신흥동·신평동·모전동의 명칭을 점촌1·2·3·4·5동으로 변경했다.
인구
1995년 통합 전 점촌시의 인구는 1956년 읍 승격 당시 2만 800명이었으며, 해마다 증가해 1986년 1월 1일 시로 승격될 당시는 5만 3,571명이었다. 그러나 1986년 이후 1991년까지는 광산경기의 침체로 인구가 계속 감소했다. 문경군의 인구는 지속적으로 감소했으나, 비교적 인구변화는 적었다.
1975년 인구는 16만 1,115명으로 1965년의 16만 1,116명과 비교해 볼 때 변화가 없는데, 이는 농업 외에 광업 발달에 따른 고용기회의 증대가 인구유출을 막는 요인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70년대 후반부터는 광업의 쇠퇴로 인해 인구유출이 두드러졌다. 1990년의 인구는 7만 2,075명으로 1975~90년에 55% 정도의 인구감소율을 보였다.
문경시와 점촌시가 통합된 1995년의 문경시 인구는 9만 8,543명이었다. 이후 감소추세가 이어져 2024년 기준 인구는 6만 8,529명을 기록했다. 전체 시인구의 약 58%가 통합 이전의 점촌시 지역에 분포한다. 행정동별로 볼 때 점촌2·3·5동(3만 1,346명)에 많은 인구가 거주하고, 동로면(1,963명)·영순면(2,297명)은 인구가 적다.
연혁
일찍부터 인간의 거주가 있었음을 청동기시대의 유물·유적의 발견으로 알 수 있다.
삼한시대에는 진한의 근기국(勤耆國:지금의 산양면 일대)이 이 지역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56년(아달라왕 3)에 신라가 계립령(鷄立嶺)을 개척했다고 하는 기록으로 보아 고대부터 영남과 그 이북을 연결하는 지역으로서 중시되었음을 알 수 있다. 신라 때에는 고사갈이현(高思曷伊縣:또는 冠文縣)이 설치되었으며, 757년(경덕왕 16)에 관산현(冠山縣)으로 개칭해 고령군(古寧郡:함창) 영현이 되었다. 고려초인 940년(태조 23)에 문희군(聞喜郡)으로 이름을 바꾸고, 1018년(현종 9)에 상주의 속현이 되었다가 후에 문경현으로 개칭했다. 1390년(공양왕 2) 감무를 둠으로써 독립했다. 이때 상주의 속현인 가은현(加恩縣:신라의 加害縣, 757년 가은현으로 개칭)을 병합했다. 조선 태종 때의 군현제 개편으로 문경현이 되었으며, 호계현(虎溪縣:신라의 虎側縣 또는 拜山城, 757년 호계현으로 개칭, 1018년 상주에 소속)이 문경으로 이관되었다. 임진왜란으로 문경새재의 중요성이 재확인되어 1708년 조령산성이 축조되었다. 지방제도 개정으로 1895년에 안동부 문경군, 1896년에 경상북도 문경군이 되었다. 1906년 월경지 정리에 의해 상주의 두입지인 영순면·산동면·산서면·산북면·산남면과 예천의 두입지인 동노소면이 문경에 편입되어 면적이 크게 넓어졌다. 1914년의 군면 폐합으로 동노소면·산북면·호서남면 등을 제외한 다른 면들은 통폐합되었다. 즉 읍내면·초곡면이 문경면으로, 신남면·신동면이 마성면으로, 가은면·가동면·가현면·가북면이 가은면으로, 가서면·가남면이 농암면으로, 호현면·산서면이 호계면으로, 산동면·산남면이 산양면으로, 영순면과 용궁군 서면이 영순면으로 합해졌다. 1956년 호서남면이 점촌읍으로, 1973년 문경면과 가은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86년 점촌읍이 시로 승격·분리되었다. 1995년 지방자치선거를 앞두고 실시된 전국행정구역개편으로 문경군과 점촌시가 통합되어 문경시라는 새로운 형태의 도농통합시를 이루었다(→ 점촌시).
자연환경
시의 서·북쪽은 소백산맥이 뻗어 있어 산세가 험준하며 동남쪽은 100m 내외의 저산성 산지이다.
시의 중동부는 운달산(雲達山:1,097m)·대미산(大美山:1,115m)·황정산(皇庭山:1,077m) 등이 북으로 이어지며, 북부산지는 대미산에서 시작해 주흘산(主屹山:1,106m)을 거쳐 충청북도 괴산 쪽으로 이어진다. 서부는 마폐봉(馬閉峯:922m)에서 시작하여 조령산(鳥嶺山:1,017m)·조항산(鳥項山:951m)·청화산(靑華山:970m)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1,000m 내외의 높은 산들에 둘러싸인 문경분지를 이루며, 조령·이화령 등은 예로부터 서울과 영남지방을 잇는 교통로로서 매우 중요했다.
수계의 발달은 미약한 편으로 남부에 충적평야가 발달해 있다. 조령천·신북천과 낙동강의 지류인 영강이 흐른다. 옛 점촌시의 중부를 중심으로 고생대 조선계 지층의 석회암이 분포해 곳곳에 카르스트 지형이 나타나며, 이곳에서 생산된 석회암이 일대의 시멘트 공장에 공급된다. 불정동과 유곡동 일대에는 고생대·중생대의 평안계지층이 분포해 무연탄이 매장되어 있다.
산세가 높고 내륙에 위치해 대륙성기후의 특성이 뚜렷하다. 통합 전 문경시 지역은 연평균기온 12.5℃ 내외, 1월평균기온 -4℃ 내외, 8월평균기온 25.4℃ 내외, 연평균강수량 1,079㎜ 정도이다. 한편 통합 전 점촌시 지역은 연평균기온 12℃ 내외, 1월평균기온 -2.3℃ 내외, 8월평균기온 25.1℃ 내외, 연평균강수량 1,170.1㎜ 정도이다. 온대성식물 생장지로 비교적 적합하며, 박달나무의 군락이 자생한다.
인구
1995년 통합 전 점촌시의 인구는 1956년 읍 승격 당시 2만 800명이었으며, 1970년에 3만 7,366명, 1975년에 4만 1,698명으로 해마다 증가해 1986년 1월 1일 시로 승격될 당시는 5만 3,571명이었다.
그러나 1986년 이후 1991년까지는 광산경기의 침체로 인구가 계속 감소하여, 1986~91년에 약 9.4%의 인구가 감소했다. 문경군의 인구는 지속적으로 감소했으나, 비교적 인구변화는 적었다. 1975년 인구는 16만 1,115명으로 1965년의 16만 1,116명과 비교해 볼 때 변화가 없는데, 이는 농업 외에 광업 발달에 따른 고용기회의 증대가 인구유출을 막는 요인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70년대 후반부터는 광업의 쇠퇴로 인해 인구유출이 두드러졌다.
1990년의 인구는 7만 2,075명으로 1975~90년에 55% 정도의 인구감소율을 보였다. 문경시와 점촌시가 통합된 1995년의 문경시 인구는 9만 8,543명이었으며, 1996년 인구는 그보다 약간 감소한 9만 5,777명이다. 2024년 기준 인구는 6만 8,529명이고 전체 시인구의 약 58%가 통합이전의 점촌시 지역에 분포한다. 행정동별로 볼 때 점촌2·3·5동(3만 1,346명)에 많은 인구가 거주하고, 동로면(1,963명)·영순면(2,297명)은 인구가 적다.
산업과 교통
산악지역에 해당하여 경지면적은 전체의 13.69%뿐이다. 논이 67.75㎢, 밭이 57.09㎢로 논이 더 많다(2013). 농경지는 영순면·산양면 등에 집중분포하나 토질은 척박한 편이다. 쌀·보리 등이 생산되고 담배·송이버섯 재배와 양잠 등이 활발하다. 임야면적은 704.45㎢, 임야율은 77.28%에 이르며, 목재생산이 많으나 유용재의 생산증대가 시급하다.
조선시대 서민의 그릇을 굽는 작은 촌락이던 이 지역에 경북선 등 철도가 부설되면서 1960년대말부터 무연탄·흑연·석회석 등의 풍부한 지하자원 개발을 중심으로 하는 광업도시로 발전했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 이후 석탄산업의 합리화 시책에 따른 석탄의 수입자유화와 함께 경쟁력을 잃고 광업이 사양화되었다.
1991년 47만 73t을 생산하여 1986년의 109만 6,000t에 비해 그 생산량이 현저히 감소했다. 2013년 기준 전체 41개 광구 중 22개소에서 규석·장석 23만 5,142t을 생산했다. 또한 문경읍 일대는 점토와 좋은 물, 화목을 쉽게 구할 수 있어 도자기공업이 활발하다. 공업은 매우 영세하며, 55개 공장에서 2,286명의 종업원이 일하고 있다.
경북선이 시의 남부를 지난다. 도로는 이화령을 지나 충주-서울 방면으로 이어지는 국도가 시를 남북으로 가로지르고, 예천·안동·김천 등과 통하는 도로가 있다. 그밖에 단양으로 통하는 지방도가 동로면·산북면·산양면·영순면을 지난다. 도로총길이 604.49km, 도로포장률은 66.9%이다(2013).
유물·유적·관광
국가지정문화재(보물 8, 사적 1, 천연기념물 2, 중요무형문화재 2), 도지정문화재(유형문화재 15, 기념물 6, 민속자료 1, 무형문화재 5), 문화재자료 18점, 등록문화재 2점이 있다.
선사시대의 유물·유적으로는 흥덕동에서 마제석촉이 발견되었으며, 문화재로는 내화리3층석탑(內化里三層石塔, 보물 제51호), 봉암사지증대사적조탑(鳳巖寺智證大師寂照塔, 보물 제137호), 봉암사3층석탑(鳳巖寺三層石塔, 보물 제169호), 봉암사정진대사원오탑(鳳巖寺靜眞大師圓悟塔, 보물 제171호), 대승사목각탱 및 관계문서(보물 제575호) 등과 봉암사마애보살좌상(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21호)·미륵사지마애여래좌상 등의 불상이 있다.
사적으로는 문경관문(사적 제147호, 제1관문 主屹關, 제2관문 鳥谷關, 제3관문 鳥嶺關)이 있으며, 농암면의 반송(천연기념물 제292호)과 홍귀달선생신도비(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22호) 등이 있다. 이외에 조선시대 40개 찰방역(察訪驛) 가운데 하나였던 유곡역에 관한 사실을 알리는 유곡역지비석(幽谷驛址碑石)들이 점촌북초등학교 정문 앞에 수집되어 있다.
문경새재도립공원은 조령에 있는 문경 제1, 2, 3 관문 외에 주봉인 주흘산을 비롯해 폭포·계곡·기암·약수터 등 수려한 자연경관과 문화경관자원을 갖추고 있다. 주흘산과 조령산은 사철 등산객이 즐겨 찾는 곳으로, 주흘산의 대표적인 등산 코스는 제1관문-여궁폭포-혜국사-샘터-주흘산 정상-제2관문으로 이어진다. 문경새재도립공원 내의 집단시설지구는 극기훈련장으로 많이 활용되고 있으며, 경북8경의 하나인 영강은 수석산지로 유명하다.
한편 불정동의 수정봉 기슭에 있는 운암사(雲巖寺)는 신라 무열왕 때 의상이 창건한 고찰로서 주변의 빼어난 카르스트 지형과 더불어 아름다운 경관을 이루고 있다.
교육·문화·의료·복지
전통 교육기관으로는 문경향교·근암서원·한천서원·소양서원·웅연서원·영고서재 등이 있었는데 문경은 영남학파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학문이 발달했던 곳이다. 근대 교육기관으로는 대한제국 말기에 세워진 육영학교, 1930년대에 세워진 심상소학교, 1934년에 세워진 호서남공립보통학교(지금의 호서남초등학교), 1943년에 세워진 유곡간이학교(지금의 점촌북초등학교)를 비롯해 문경공립학교·농암공립학교·문경농림학교 등이 있었다.
2017년 기준 교육기관으로는 유치원 26개소, 초등학교 17개소, 중학교 9개소, 고등학교 6개교, 전문대학 1개교가 있다. 문경문화원은 매년 10월 문화제를 개최하고 있으며, 노인대학을 운영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문협 문경지부에서 기관지 <백화문학>을 발간하고 있으며, 나래시조문학회가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이 지방의 민속놀이로는 석전·지신밟기·타구놀이 등이 전하며, 설화로는 <최명길과 문경새재 성황신에 얽힌 이야기>·<견훤의 출신지에 관한 이야기>·<뙤다리(唐橋) 전설>·<영신들전설> 등이 구전된다.
전래되는 민요로는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문경아리랑>을 비롯해, 발달했던 직포수공업과 관련된 민요인 <누에노래>·<뽕따는 처녀노래>·<베틀노래>등의 노동요와 동요·주무요·유희요 등이 주류를 이루며, <새재노래>·<보리타작노래>·<달강노래> 등이 불려지고 있으나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문화시설로는 공공도서관·공연장·실내체육관·문화회관 등이 있다.
2016년 기준 의료기관으로는 종합병원 1개소, 병원 2개소, 의원 45개소, 요양병원 2개소, 치과병원 17개소, 한의원 14개소, 보건소 관련 의료기관 23개소가 있다. 사회복지시설로는 노인여가복지시설 376개소, 노인주거복지시설 2개소, 노인의료복지시설 20개소, 재가노인복지시설 7개소, 아동복지시설 1개소, 장애인복지생활시설 4개소, 어린이집 39개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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