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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 국보(1974.07.09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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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무령왕릉 널길 중간에 있는 돌짐승상 앞에서 발견된 왕과 왕비의 지석. 직4각형의 각섬석 앞뒷면에 세로선을 긋고 해서로 음각했다. 왕비의 지석 앞면에는 무령왕 사망 후 3년 뒤에 왕비가 사망한 사실과 그로부터 3년 뒤에 왕과 합장한 사실이 적혀 있고, 뒷면에는 '전일만문'이라는 묘지 대금에 관한 기록이 있다. 지석에 나타나는 월삭 및 일간지는 백제 역법이 중국 남조 송나라 원가력의 영향을 받은 것임을 보여준다.
무령왕릉 널길 중간에 있는 돌짐승상 앞에서 발견된 왕과 왕비의 지석. 국보(1974.07.09 지정). 왕의 지석 너비 41.2㎝, 높이 35.1㎝, 두께 4.5㎝. 왕비의 지석 너비 42.4㎝, 높이 35.5㎝, 두께 4.3~6㎝. 국립공주박물관 소장.
직4각형의 각섬석 앞뒷면에 세로선을 긋고 해서로 음각했다. 왕의 출생연도나 경력에 대한 기록은 없고 장례에 필요한 기사만 있다. 왕의 지석 앞면에는 무령왕이 중국 양나라로부터 받은 작호, 사망시 나이와 시신을 능묘에 안장한 시기가 적혀 있고, 뒷면에는 동·남·북에 방위간지가 새겨져 있다. 이것은 능묘에 관한 방위도 혹은 능역도를 겸한 것이다.
왕비의 지석 앞면에는 무령왕 사망 후 3년 뒤에 왕비가 사망한 사실과 그로부터 3년 뒤에 왕과 합장한 사실이 적혀 있고, 뒷면에는 '전일만문'이라는 묘지 대금에 관한 기록이 있다. 이것은 묘지매매기록으로 보인다. 또한 지신으로부터 토지를 매입해 능묘를 삼았기에 문권을 작성해 증거로 한다는 내용도 있다.
지석에 나타나는 월삭 및 일간지는 백제 역법이 중국 남조 송나라 원가력의 영향을 받은 것임을 보여준다. 아울러 무령왕의 생몰년을 토대로 검토해본 결과 동성왕의 배다른 형이 된다는 견해가 제시되어 백제 정치사의 새로운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이 지석은 삼국시대 고분 중 최초로 피장자와 축조연대를 밝혀주고 있으며, 백제문화를 살피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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