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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일

다른 표기 언어 Hermann Wey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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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885. 11. 9, 독일 함부르크 근처 엘름스호른
사망 1955. 12. 8, 스위스 취리히
국적 독일/미국

요약 독일 태생 미국의 수학자.

수학에 대한 다방면의 연구로 순수수학을 이론물리, 특히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으로 연결짓는 데 공헌했다.

괴팅겐대학교 학생으로 있을 때(1908 졸업) 그는 다피트 힐베르트의 영향 아래 있었다. 1913년 취리히공과대학 수학교수가 되었고, 거기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동료가 되었다. 바일의 업적 가운데 현저한 특성은 과거에는 무관했던 주제를 통일하는 그의 능력에 있었다.

〈리만 곡면 개념 Die Idee der Riemannschen Fläche〉(1913)에서 그는 함수론과 기하학을 결합시켜 수학의 새 분야를 만들었다. 이리하여 해석학·기하학·위상수학에 대한 현대적인 종합개념이 생겼다.

상대성이론에 관한 강의의 파생물인 그의 〈공간·시간·물질 Raum, Zeit, Materie〉(1918)은 철학에 대한 그의 예리한 관심을 보여주었고 상대성이론에 대한 그의 많은 연구결과들을 포함하고 있다. 그는 전자기장과 중력장이 시공간의 기하학적 성질로 나타나는 최초의 통일장이론을 만들어냈다. 이탈리아의 수학자 툴리오 레비 치비타의 벡터 평행변위 개념에 대한 연구는 미분기하학에 끼친 위 이론들의 영향력을 가장 잘 나타낸다.

그는 이러한 개념을 리만 계량(Riemann metric)의 종속으로부터 탈피시켜 미국인 오스월드 베블런과 다른 이들이 사영미분기하를 급속히 발전시키도록 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1923~38년 행렬표현을 이용해 일반 연속군이론을 전개했다. 그는 원자 수준 양자현상의 대부분의 규칙성은 군이론을 이용하여 가장 간단히 이해할 수 있음을 알아냈다. 〈군이론과 양자역학 Gruppentheorie und Quantenmechanik〉(1928)에 실린 그의 발견들은 현대 양자이론을 형성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바일은 1930년 괴팅겐대학교 수학교수로 임명되었다. 나치가 그의 많은 동료들을 해임하자 그도 독일을 떠나 미국으로 건너가 뉴저지에 있는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에서 제공한 직위를 받아들였다. 1939년에 미국 시민이 되었다. 1955년 정년퇴직 뒤 바일은 고등연구소의 명예교수로 남아 프린스턴과 취리히를 왕래했다. 그는 여러 수학분야에 공헌했다. 그가 발견한 모듈러스 1인 수들의 일양분포(一樣分布 uniform distribution)는 나중에 해석정수론 발전에 기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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