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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43. 9. 29, 폴란드 부오추아베크 근처 포포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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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폴란드 |
요약
폴란드 국내외에서 수백만 명의 폴란드 노동자들을 이끄는 카리스마적 지도자로 인정되었으며, 1983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목수의 아들인 바웬사는 초등학교와 직업학교 교육만 받고, 1967년 그다인스크에 있는 대규모 레닌 조선소에서 전기공으로 일했다.1980년 8월 14일 레닌 조선소에서 식료품 가격 인상에 항의하는 시위가 일어났을 때, 바웬사는 그다인스크-소포트-그디니아 지역의 공장들을 묶는 공장간 파업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았다. 이어 1,000만 명 가량의 폴란드 노동자와 농민이 반자치적인 조합에 가입함에 따라 공장간 파업위원회는 연대자유노조로 이름을 바꾸고, 전국적인 노동조합조직으로 탈바꿈했으며 바웬사는 의장이 되었다. 1988년 폴란드 정부는 노조를 인정했다. 이어 1990년에 바웬사는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폴란드 국내외에서 수백만 명의 폴란드 노동자들을 이끄는 카리스마적 지도자로 인정되었으며, 1983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목수의 아들인 바웬사는 초등학교와 직업학교 교육만 받고, 1967년 그다인스크에 있는 대규모 레닌 조선소에서 전기공으로 일했다.
1970년 식량폭동 당시 바웬사는 그곳에서 거리 시위를 하던 사람들이 경찰의 총에 맞고 쓰러지는 것을 목격했다. 1976년 폴란드 공산정부에 대항한 시위가 발생했을 때, 바웬사는 반정부 노동조합 활동가로 부상했고 그 일로 해고되었다.
1980년 8월 14일 레닌 조선소에서 식료품 가격 인상에 항의하는 시위가 일어났을 때, 바웬사는 조선소 담벽을 타고 넘어가 내부 노동자들과 합류했다. 이때 바웬사는 경영진과 협상할 파업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3일 후 경영자측은 파업노동자들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다른 그다인스크 공장의 파업노동자들이 바웬사에게 동맹을 호소하며 파업을 계속해 달라고 청하자 즉시 동의했다. 바웬사는 그다인스크-소포트-그디니아 지역의 공장들을 묶는 공장간 파업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았다. 위원회는 파업권과 노동조합결성권 등의 과감한 정치적 요구를 내걸고 총파업에 돌입했다.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되는 것을 두려워한 공산 당국은 노동자들의 주요 요구사항을 받아들였다. 8월 31일 바웬사와 폴란드 초대 부총리 야지엘스키는 노동자들에게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조직을 결성할 수 있는 권리를 양보한다는 내용의 협정에 서명했다.
이 기념비적인 협정이 체결된 데 따른 호응으로 1,000만 명 가량의 폴란드 노동자와 농민이 반(半)자치적인 조합에 가입함에 따라 공장간 파업위원회는 연대자유노조로 이름을 바꾸고, 전국적인 노동조합조직으로 탈바꿈했으며(연대자유노조), 바웬사는 의장 겸 대변인을 맡았다. 같은 해 10월 폴란드 정부는 연대자유노조를 공인했다. 바웬사는 소련이 개입하지 못하도록 연대자유노조와 정부가 마찰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조직을 이끌었다.
그러나 연대자유노조가 얻은 것은 일시적이었다. 1981년 12월 13일 폴란드 정부는 계엄령을 발표하고, 연대자유노조를 불법화했으며, 바웬사를 포함한 연대자유노조의 지도자들을 대부분 체포했다. 바웬사는 이때 거의 1년 동안 구금되었다. 1983년 바웬사가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결정되자 폴란드 정부는 이를 비판했다.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망명객이 될 것을 두려워한 바웬사는 폴란드에 남아 있고, 대신 부인 다누타가 오슬로로 가서 노벨상을 받았다.
연대자유노조의 지하활동을 지도하면서 바웬사는 끊임없이 폴란드 정부에게서 고초를 당했다. 1988년 경제 사정이 악화하고 새로운 노동 불안이 일자, 폴란드 정부는 바웬사 및 연대자유노조 지도부와 협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 협상 끝에 연대자유노조의 합법적 지위를 회복시키는 한편, 갓 복원한 폴란드 의회(Sejm) 상원의 일부 의석을 놓고 자유선거 실시를 용인한다는 합의가 도출되었다.
1989년 6월 실시한 이 선거에서 연대자유노조는 압승을 거두었다. 바웬사가 공산당과의 연립정부 구성안을 단호히 거부하고 나오자, 의회로서도 연대자유노조 주도의 정부안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정작 바웬사 자신은 총리직을 결연히 마다했다. 1989년 바웬사는 연대자유노조의 동료이던 마조비에츠키가 총리가 되는 일에 협력했으나, 1990년에는 그와 대결해 압도적인 표차로 폴란드의 초대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대통령이 된 바웬사는 1991년 폴란드에서 처음으로 자유총선거를 실시하도록 도왔고, 내각이 계속해서 중앙집권경제체제를 자유시장경제로 전환하도록 감독했다. 그러나 임기말에 바웬사는 평범한 연설, 대결지향적인 방식, 낙태를 엄격히 제한하는 새 조처를 완화하자는 제안에 반대한 것 등을 이유로 인기가 떨어졌다. 1995년 바웬사는 재선에 도전했으나 옛 공산당 출신인 민주좌파연합의 알렉산데르 크바스니에프스키에게 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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