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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220경, 중국 중도(中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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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294. 1, 이라크 바그다드 |
국적 | 몽골 |
요약 그리스도교 네스토리우스교의 성직자.
바 사우마가 몽골 제국의 특사로 서유럽에 갔던 여행은 아주 중요한 사실인데도 불구하고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바 사우마의 여행은 그와 같은 시기를 살았던 베네치아 사람 마르코 폴로의 아시아 여행과 쌍벽을 이루는 것이었다.
바 사우마는 중도(지금의 베이징)에 살고 있던 부유한 그리스도교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투르키스탄의 유목민족인 위구르족의 후예였다. 그는 23세 때 네스토리우스교의 성직자가 되어 고행자로서 또 스승으로서 명성을 얻었다. 제자 마르쿠스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성지순례를 떠나서 중국 서부의 간쑤 성[甘肅省]과 허톈[和闐, Khotan] 지방을 지나 페르시아의 호라산, 그리고 아제르바이잔을 거쳐 네스토리우스파 교회의 총주교가 살고 있던 바그다드에 도착했다.
지방에서의 전투로 인해 예루살렘에 가지 못하고 얼마 동안 아르메니아의 네스토리우스교 수도원 등지에서 머물다가 네스토리우스교 교회 총주교의 부름을 받고 바그다드로 돌아갔다. 총주교는 그에게 페르시아에 있던 몽골 제국 4한국의 하나인 일 한국의 아바가에게 보내는 사절단의 단장으로 가도록 명했다. 후에 그는 동방에 있던 네스토리우스교 단체들을 방문하는 최고 성직자에 임명되었는데 이 직위는 부주교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1287년 종교적인 절충주의자이며 그리스도교에 호의적이었던 아바가의 아들 아르군이 서유럽의 그리스도교 군주들에게 바 사우마를 사절로 파견했다. 아르군은 서유럽 군주들을 설득해 성지로부터 이슬람교도들을 함께 몰아내고자 했다. 바 사우마는 콘스탄티노플로 가서 동로마 제국의 황제 안드로니쿠스 2세 팔라이올로구스의 환대를 받았다. 그러나 로마에 도착하자마자 교황 호노리우스 4세가 바로 얼마 전에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추기경단이 바 사우마를 회견했는데 그들은 바 사우마의 임무보다는 그의 신학적인 견해에 더 관심을 갖고 그에게 네스토리우스교의 교리를 이야기하도록 요구했다. 네스토리우스교가 서유럽에서는 이단으로 여겨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요구에 응하기 싫었던 바 사우마는 로마를 떠나 파리로 가서 필립 4세의 궁정에서 1개월간 머물렀다. 그리고 보르도로 가서 영국의 에드워드 1세를 만났다. 필립 4세와 에드워드 1세는 아르군과 동맹하려는 의사가 없었다. 프랑스를 떠난 바 사우마는 다시 로마로 와서 새로 뽑힌 교황 니콜라우스 4세를 만나고 페르시아로 돌아왔다. 후에 바 사우마는 일 한국의 궁정 목사로 임명되었고 더 뒤에는 은퇴해 아제르바이잔의 마라게로 가서 교회를 창설했다.
주의 깊은 여행가였던 그는 페르시아어로 일기를 썼는데, 이 일기는 비범한 외부인의 관점으로 본 중세 서유럽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월리스 버지 경의 〈쿠빌라이 칸의 성직자들 Monks of Kublai Khân〉에 이 일기의 영역본이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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